초등학교 때 생일이거나 어린이날, 크리스마스와 같은 기념일이면 엄마는 갖고 싶은 것이 있냐고 물으셨다. 그럴 때면 머릿속에선 컴퓨터나 피아노가 떠올랐지만 내 대답은 언제나 '책'이었다.
책을 좋아하긴 했어도 대단한 문학소녀나 책벌레는 아니었다. 하지만 책 정도의 값이면 엄마도 흔쾌히 사줄 수가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그걸 사주는 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엄마는 내가 책을 읽는 모습을 보며 어려운 형편과 고단한 삶을 참아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부터였을까?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보다 할 수 있는 지를 먼저 떠올렸다. '마음'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형편', '상황' 이런 단어가 내겐 더 와닿았다. 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쪽을 택했다. 그래서 내겐 늘 시간이 많았다. 그 시간에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 일엔 돈이 들지 않았다.
20대가 되고부터는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을 팔아 돈을 마련해야 했기 때문이다.
근로장학금을 받기 위해 수업이 없는 시간엔 과사무실 청소도 하고 잔심부름도 도맡아 했다. 수업이 끝나고는 편의점, 고깃집, 피자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주말에 백화점 행사 매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 수입이 짭짤했다. 그러다 과외를 시작하고부터는 몸이 조금 덜 힘들어졌다.
늘 바쁘게 움직이는 것이 습관이 되었을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불안해졌다.
몸과 마음이 편하면 안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빈시간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지금은 그렇게까지 아등바등 살지 않아도 되는데 천성이 그런 건지, 아니면 오랜 습관에 인이 박인 것인지 잘 고쳐지지가 않는다. 가만히 있으면 해야 할 일이 생각나고 없으면 만들어내서 한다. 티브이를 보면서는 빨래라도 개거나 스트레칭이라도 하고, 이동 중에는 강의를 듣거나 잡다한 일을 처리해야 마음이 편하다. 시간대비 효율성을 추구하는 나에게 '가성비'는 참 잘 어울리는 단어였다.
그런 내가 2년 전부터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1년 전부터는 매일 글쓰기 모임을 시작하여 거의 매일같이 글을 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글쓰기처럼 가성비 떨어지는 일도 없다.
글 한편을 완성하는데 짧아도 한 시간 이상, 보통 2~3시간씩 붙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글을 쓴다고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다. 글을 자주 쓰면 글쓰기 실력이 는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니 증명할 길이 없다. 오히려 쓰면 쓸수록 어려움만 느낀다. 차라리 그 시간에 일을 하거나 다른 걸 배웠으면 실력이 준전문가 수준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나는 아직 글쓰기를 그만둘 생각이 없다.
미스터 선샤인이라는 드라마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난 원체 무용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좋아하오. 달, 별, 바람, 웃음, 농담, 그런 것들."
누군가에게는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는 이 대사를 듣고 난 슬퍼졌다. 무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동안 그런 여유도 없이 늘 바쁘게만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한 연민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글쓰기를 하고부터는 나에게도 그런 여유가 있는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글쓰기는 가성비도 효율성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바쁘게 움직이거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지 않고 그저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만 집중할 수 있다. 물론 바쁜 와중에 시간을 내서 글을 쓰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매일같이 글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것, 글을 쓸 시간이 있다는 것, 글을 쓴 여력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삶도 꽤 여유로운 삶이 아닌가 싶다. 만약 글쓰기가 아니었으면 내 인생이 퍽 고단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이것이 글쓰기가 내게 특별한 이유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