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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Jun 08. 2023

방황해도 괜찮아.

방향만 맞다면 조금 천천히 가도 괜찮아

며칠 전 20대에 받은 편지를 모아둔 상자를 뒤적이다가 이런 종이를 발견했다.

2003년, 정확히 20년 전이다.

이때 나는 21살이었고, 주일학교 교사를 할 만큼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여 수녀님들이 눈독(?) 들이는 인재였다.(현재는 냉담중.ㅠㅠ)

성당에서는 가끔 신앙생활에 도움이 될 만한 프로그램을 하곤 했는데 그때 작성했던 인생계획표(?) 같다. 20년 동안 나는 정말 많이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적힌 삶과 지금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무엇이든 하려고 하는 의지가 충만했구나, 배우는 것을 좋아했구나, 글을 쓰고 싶어 했구나..'

 

지금 나는 국어선생님이고,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 종이만 보면 나는 꿈을 이루었고, 내 인생은 계획대로 척척 진행되어 온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계획표에 의하면 5년 후인 26살에 선생님이나 수녀님, 작가가 되어있을 것 같다고 했으나 실제로 26살의 나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국어교사된 것은 그보다 씬 뒤인 31살이다. 아마 이 종이를 31살 전에 발견했다면 어땠을까? 꿈을 이루지 못한 삶이라고 말했을까? 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며 한탄했을까?


실제로 20대 후반, 난 인생이 내 맘 같지 않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 같다. 마음대로 되는 일도 하나 없다고, 앞 보이지 않는다며 답답해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니 그렇게 방황하고 한탄하던 순간들도 꿈을 향해 가던 과정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뿐.


터널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사람은 터널에 끝이 있다는 것을 믿기 힘들어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걸어가야만 한다. 제자리에 앉아있는 한 영원히 빛을 볼 수 없다. 어느 방향으로든 꾸준히 걸어가야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시작하든, 원하고 바라던 끝을 보든 할 수 있다.

 

투고한 원고가 번번이 퇴짜를 맞으면서 내가 글 쓰는 데 별로 소질도 없으면서 괜한 일에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것은 아닌가, 헛된 기대를 품고 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자주 하는 요즘이다. 직장 다니며 애 둘 키우는 것도 충분히 피곤한데 없는 시간을 쪼개 글을 쓰겠다고, 그러느라 아이들에게 신경을 제대로 못써준다고 느끼거나 나와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는 날이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며 나를 다그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다그치고 방황하는 날들도 결국은 내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이지 않겠냐고, 방향만 맞다면 속도야 조금 늦어도 괜찮지 않으냐고 나를 다독여본다.

때마침 우연히 읽은 소설 속의 대화도 나를 위로해 주는 듯하다.


"이모,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뭔가를 하려는 바보 같은 마음은 대체 왜 생기는 걸까요?"

"만약에 네가 무인도에 혼자 갇혀 있다고 생각해 봐. 밤이 되었는데 저 멀리 수평선 가까이에서 불빛이 보이고, 그러면 너는 너무 멀어서 네가 보이지 않을 거란 걸 알면서도, 무언가를 하지 않을까? 단 하나밖에 없는 성냥이라도 그어서 신호를 보내려고 하겠지.

간절하다는 건 그런 거니까."

-<눈부신 안부>, 백수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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