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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Jul 03. 2023

모둠 일기 쓰기의 좋은 점

교사가 된 후로 지금까지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담임을 맡고 있다.

담임 기간은 보통은 1년이지만 휴직과 복직으로 인해 1학기 담임을 맡은 것까지 포함하면 총 11 학급의 담임을 맡았다.

학교에서 담임을 맡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업무 가중도뿐 아니라 정신적인 피로도면에서도 차이가 크다. 어느 선생님은 담임을 맡지 않으니 학교 생활이 너무 심심하고 허전하다고 했다. (그 기분 한 번만 느껴보고 싶..) 아이들은 담임이 한 명이지만 담임에게는 챙겨야 할 아이가 족히 서른 명쯤 된다.(예전에 비하면 많이 줄었지만..) 아이들이 한 마디씩만 해도 서른 명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니 하루종일 조용한 날은 손에 꼽는다.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담임을 맡는 것도 힘든 만큼 보람도 있고 소소한 즐거움도 많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우리 반 아이들에게 더 애정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다. 체육대회날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고 축제 준비를 같이 하면서 우리 사이는 확실히 더욱 끈끈해진다. 그래서 종업식이 다가오면 서운하고 허전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다. (시원한 마음이 드는 해도 있다^^;;)

그래서 이왕 하는 거 아이들과 좀 더 잘 지내고 즐겁게 생활하기 위해 다양한 학급 활동을 해왔다. 코로나 이전에는 매달 가사 실습실을 빌려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단합대회를 하기도 하고 어느 해에는 학급 문집을 만들기도 했다. 그런 추억이  많은 해에는 아이들도 유독 오래 기억에 남았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각종 행사가 취소됨은 물론 다 함께 얼굴을 마주하는 시간도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와 함께 학급 결속력이나 공동체 의식 등도 약해졌다. 작년에는 육아휴직 후 2학기에 복직하느라 아이들과 많이 친해지지도 못한 채 헤어졌다.  

그래서 올해는 담임을 맡는 마음이 남달랐다. 아이들에게 좀 더 애정을 가지고 잘 챙겨주고 싶기도 했고, 반 아이들끼리 잘 어우러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고민 끝에 모둠일기 쓰기를 계획했다.

예상했던 대로.. 모둠일기를 쓴다고 하니 아이들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일단 중학생은 뭔가를 '쓰는' 행위를 질색한다. 하지만 온갖 그럴싸한 말들로 아이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모둠일기는 우리 반 소통의 창구이다. 서로를 잘 알아야 나도 너희를 더욱 잘 챙겨줄 수 있다. 일기를 쓴다는 건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성찰을 통해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21세기에 글쓰기 실력은 매우 중요하다.............. 일단 그냥 써. "

 

모둠일기는 5명이 한 조가 되어 하루에 한 명씩 쓴다. 주 5일이니까 주 1회 일기를 쓰는 셈이다.

모둠일기에는 규칙이 있다.

-학교 오자마자 제출하고 종례 할 때 받아갈 것.

-일기는 반드시 하교 후에 집에서 쓸 것. 못쓰거나 안 가져오면 한 번 더 쓸 것.

-지면의 반이 넘을 것(10줄 이상)

-학교 생활, 가정생활, 친구에 대한 고민, 학급에 관한 일 모든 내용이 가능하지만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 만한 내용은 쓰지 않을 것.

-자신의 하루를 되돌아보고 일기를 쓰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날은 맨 뒷장에 부착된 <모둠일기 쓰기 좋은 글감>을 참고하여 골라 쓸 것.

아이들은 생각보다 일기를 꽤 열심히 써왔다. 물론 처음에는  적응이 안 돼서 맨날 두고 오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이틀 치, 삼일 치를 써야 하는 일도 생겼다. 일기도 밀리면 숙제가 되고 숙제가 되면 하기 싫은 법이라고 그날그날 쓸 수 있도록 아이들을 독려하며 모둠일기를 계속 이어갔다. 아이들의 일기를 읽고 난 후에 코멘트를 달아 주었는데 나도 밀리지 않기 위해 매일 하루의 첫 공강시간을 모둠일기 검사하는 시간으로 정해두었다.


내가 일기 쓰기를 통해 기대한 것은 아이들과 친밀감과 글쓰기랑 친해지기,  이렇게 두 가지이다.

실제로는 어땠을까?


매일 한 명씩 얼굴을 보며 대화 나눌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도 수업하랴 업무 보랴 시간이 없고, 아이들도 숙제하랴 학원 가랴 바쁘다. 그런데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를 듣게 되니 확실히 아이들과 매우 가까워진 기분이다. 게다가 아이들은 모둠일기임에도 불구하고 정말 솔직하게 자기의 이야기를 쓴다. 어떤 아이돌을 좋아하는지, 어떤 노래를 좋아하고, 어떤 게임을 하는지부터 짝사랑하는 그 애에 대한 마음, 부모님에 대한 고민, 친구과의 갈등, 진로에 대한 걱정까지.. (절대 궁금하지 않은 남자 친구와의 기념일까지;;) 절대 상담을 통해서는 알 수 없는 내용들이다.


모둠일기로 인해 우린 서로를 더욱 잘 알게 되었다.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아이가 어제 뭘 해서 이렇게 피곤한지도 알게 되고, 쉬는 시간에도 말없이 자리에 앉아 있는 아이가 요즘 어떤 고민을 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우린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늘어갔다.  중학교는 수업시간 외에는 아이들을 관찰할 기회가 잘 없는데 일기를 통해 우리 반의 분위기, 아이들의 관계나 하교 후에 생활도 잘 알게 되니 학급 생활지도도 한결 편해졌다.


아이들은 다른 친구들의 일기를 읽으면서 이런 고민은 나만 하는 줄 알았는데, 서로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하는 것을 알고 위안을 받았다고도 했다. 하루종일 마음이 심란하고 머리가 복잡했는데 일기를 쓰다 보니 생각이 정리가 된다고도 했다. 내가 말한 적 없는 일기 쓰기의 장점들을 아이들 스스로가 느끼고 있었다.


아이들은 처음에 일기를 쓰려고 했을 때는 할 말이 없었는데 쓰다 보니 자신이 이렇게 할 말이 많았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일기를 자주 쓰고싶은일주일에 한 번밖에 차례가 안 돌아와서 아쉽다고도 했다. 그리고 친구들의 일기를 읽는 게 너무 재미있다고 했다. 그렇게 아이들은 모둠일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밤에 자려고 누우면 단톡방에 '내일 모둠일기 잊지 말고 챙겨 와'라는 메시지가 울린다.


그렇게 모둠일기 쓰기는 우리 반의 소통 창구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자세히 보면 예쁘다'는 어느 시 구절처럼 모둠일기 덕분에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그만큼 예쁜 모습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덕분에 나의 학교 생활도 한결 즐거워졌다.


오늘 아침 "너희들 일기 쓰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흐뭇하다"라고 했더니, 일기 쓰기가 그렇게 좋다고 했으면서도  "방학숙제로 설마 일기를 쓰라고 하는 건 아니겠죠?"라고 겁먹은 모습을 보였다.

알다가도 모를 중2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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