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쯤 남편에게 선물로 들어온 홍삼을 뺏어 먹고 있다. 식단과 운동은 물론 영양제도 꼬박꼬박 챙기는 나와달리 남편은 '인명은 재천'이라며 영양제는 고사하고 앓아 누울지언정 병원에도 잘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 각종 보험 회사에 큰돈을 내고 있어 아깝기도 하고 얄밉기도 하다.
홍삼 덕분인가 요 며칠은 일어나는 것이 수월하다. 오늘 아침엔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오랜만에 요가 매트를 펼치고 유튜브로 '모닝 스트레칭'을 검색하였다. 그리고는 미셀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를 읽었다.
저자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이 책은 25살에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어머니와 먹던 음식, 함께 공유하던 한국 문화 등을 떠올리며 어머니를 추억하는 에세이이다. 나는 저자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일찍 여의었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저자가 어머니에 대해 사소한 것- 습관, 취향, 함께 한 일들-까지 세세하게 기억하는 것에 비해 난 엄마에 대해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나도 저자처럼 엄마를 떠올리면 두고두고 추억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내가 남편을 소개팅으로 처음 만났을 때 남편은 고등학생 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그 말에 처음 만난 낯선 이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졌으며 순식간이 우리 둘 사이를 묶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건 오해이자 착각이었다.
부모님을 병으로 잃었지만 그걸 받아들이는 나와 남편의 태도는 사뭇 달랐다. 남편의 아버님은 건강을 매우 챙기시는 분이었다고 한다. 담배는 물론 술도 한 방울 드시지 않았으며 철마다 보약을 지어먹었다고 한다.
그런 아빠가 갑작스럽게 병을 얻고 세상을 뜨는 모습을 본 남편은 매우 충격을 받았다. 그래서 남편은 건강을 위한 그런 행동들이 다 부질없다고 믿으며 먹고 싶은 거 맘껏 먹고 스트레스받지 않는 게 제일이라는 신조가 생겼다. 그 신조를 방패 삼아 남편은 매일같이 술과 야식을 먹는다.
반면 나는 엄마가 오래 병을 앓고 암이 여기저기 전이 되고 수술과 항암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아픈 것보다 어쩌면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내 자식들에게 같은 아픔을 주지 않게 위해서라도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었다. 20대에 가끔 술은 먹었지만 피자, 치킨 등 패스트푸드는 물론이고 탄산음료 심지어 커피도 마시지 않았다. 약재 시장에서 황기니 당귀니 하는 것을 사다가 물처럼 끓여 먹거나 양배추를 사다 우려낸 물을 먹는 나를 보고 친구들은
"너 혹시.. 꿈이 무병장수니?"라고 물었다.
그런데 요즘 난 매일 커피도 마시고 밥 하기 귀찮으면 아이들과 피자나 치킨도 시켜 먹는다. 아이들이 잠든 밤에 맥주 한 캔을 시원하게 비우기도 한다. 반면에 남편은 올해 처음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대장 내시경을 하고 작은 용종도 몇 개 제거했다고 한다. 내가 그동안 알고 지낸 남편을 생각하면 대단한 발전이다.
나와 남편에게는 부모님을 일찍 여읜 아이가 지닌 상처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그동안 서로 방식은 달랐지만 각자의 방식으로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믿고 있는 그 신념, 그것이 무너지면 감당하기 너무 힘드니까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말이다. 그런데 자신의 방식이 유일하다고 믿으면 상대에게 '이해할 수 없어'와 같은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된다. 그게 또 다른 상처를 만든다.
건강을 챙기기 위한 나의 행동을 남편이 비웃듯 이야기할 때, 아픈데도 병원에 안 가는 남편을 미련스럽게 취급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또 다른 상처를 준 것이다. 어떤 사건에 대한 반응과 태도는 저마다 다르다. 사람은 같은 걸 눌렀다고 같은 게 나오는 자판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우린 나와 같은 반응을 기대하고 속단하고 쉽게 실망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남편에게 메시지가 왔다.
'안 그래도 바쁘고 피곤한데, 이번에 아이 병간호 한다고 고생 많았어. 몸 축나지 않게 보약 한 첩 지어먹어.'
이번에야말로 무병장수의 꿈을 이룰 수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