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가장 바쁜 신학기에 둘째가 수두에 걸렸다. 학기 초부터 담임이 자리를 비우게 되어 우리 반 아이들에게도 미안하고 담임 자리 채워주시는 학년 부장 선생님께도 고마웠다. 그렇게 정신없이 바쁜 3월이 무사히 지났다.
코로나가 잠잠해지니 각종 전염병들이 돌아가며 극성인 걸까? 아이 둘이 독감에 구내염에.. 돌아가며 아프기 시작했다.
"원래 애들 어릴 때 힘들어요~ 종례는 걱정 말고 가봐요!"
"쌤~ 수업 내가 바꿔줄게요. 얼른 가봐요!"
우리 2학년부 선생님들의 배려로 1학기를 잘 버텨온 듯하다. 이제 기말고사도 끝나고 성적 처리와 생기부 작성으로 바쁜 이 시기만 잘 넘기면 무사히 1학기가 끝난다고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말부터 시작된 둘째의 고열이 심상치 않다. 이틀째 열이 떨어지지 않고 약만 먹으면 토를 하는 바람에 병원 가서 해열주사랑 수액 맞으며 버텼다. 검사 결과 독감 판정을 받았다. 원인을 알았으니 치료하고 나면 금세 괜찮아지겠지 안심했다. 그러나 40도가 넘는 고열은 계속되었다. 퇴근하고 저녁마다 아이를 둘러업고 병원에 가서 해열주사와 수액을 맞추고 밤마다 울며 깨는 아이를 안아 재웠다.
아무래도 병이 단단히 났나 싶어 큰 병원에 갔는데 요즘 유행하는 '아데노 바이러스' 란다. 그러고 보니 두 눈이 빨갛게 충혈되고 눈곱도 잔뜩 꼈다. ㅠ
처음엔 걱정되고 속상한 마음이었는데 5일째 계속되는 고열과 칭얼거림에 나도 점차 지쳐갔다. 이젠 학교에다 아이가 아프다고 말하는 것도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다들 내 일처럼 걱정해 주셔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인간은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당연한 명제가 새삼 감격스럽게 다가왔다. 그렇다. 한 순간도 오직 내 힘만으로 잘 지낼 수가 없다. 내 삶이 평온하다는 것은 아이들이 건강하다는 것이고, 남편이 역할을 잘해준다는 것이며 직장 동료들이 배려해 주고 도와주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늘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님을 알게 되니 죄송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동시에 들며 마음이 숙연해졌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이의 안부와 나의 건강을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오늘따라 더욱 다정하게 들린다.
그런데 늘 내게 웃어주며 힘을 주시는 학년 부장님의 표정이 많이 지쳐 보였다. 늘 활기찬 교무실도 어딘가 모르게 쳐진 느낌이다. 그제야 우리 교무실 상황이 눈에 들어왔다.
내 앞자리 3반 담임 선생님은 지난주에 결혼을 하셨다. 그전부터 결혼준비로 자주 자리를 비우셨는데 다음 주는 신혼여행을 가신다. 내 옆자리 4반 선생님은 지난주 임신 소식을 전하셨는데 이번주엔 입덧이 시작되셨다며 많이 힘들어하신다. 5반에선 흡연과 절도 등 학생부 사안이 발생해서 담임 선생님은 징계위원회 참석과 학부모, 학생 상담으로 퇴근을 못하신다. 우리는 서로의 자리를 채워주고 도와가며 구멍을 메우고 있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많은 구멍이 생겨 버거워하는 분들이 생겨난 것이다. 내 코가 석자라 차마 보지 못하고 있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의 평온한 일상을 위해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배려와 관심이 있었듯이 나 역시 내 주위 사람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자고 생각했다.
오늘은 부장님께 "도울 일이 없을까요?"라고 여쭸더니 지금 출석정지 징계 중인 5반 아이들 좀 맡아달라고 하셨다. 출석정지는 학교에는 나오지만 교실에서 친구들과 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별도의 공간에서 지도를 받는 거라 여러 선생님의 지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혼여행으로 자리를 비우실 선생님의 생기부 정리가 다급해 보여 급한 일을 먼저 도와드렸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의 자리를 채워가며 다시 평온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나의 아픔이 커 남의 힘듦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고 다짐하곤 하는데 요즘처럼 지칠 때는 그런 생각조차 떠올리지 못한다. 그러나 늘 누군가로부터 배려받고 있음을 잊지 말고 주변을 돌아보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