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급심사 날짜가 정해진 3주 전부터 저녁 늦게까지 매일 연습을 하고 토요일도 오전에 두 시간씩 연습을 하고 왔다. 지난 주말에는 남동생네 가족과 캠핑을 갔는데 태권도 선수 출신인 외삼촌 앞에서 열심히 시범을 보였다. 삼촌의 피드백을 꽤나 진지하게 들으며 부족한 부분을 따로 연습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언제 저렇게 컸나 하는 생각에 기특하기도 했다.
승급 심사 당일, 이동하는 차 안에서 아이는 꽤나 긴장한 듯했다.
"엄마, 나 초등학교 입학식 날보다 더 떨려"
"초등학교 입학식? 그때 기억나? 정문 앞에서 엄마랑 헤어질 때 울려고 했잖아."
"응. 맞아. 혼자 교실에 들어가기 무서워서 그랬어. 근데 막상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재밌고, 기분도 좋더라"
"아마 이번에도 그럴 거야. 심사 마치고 나올 땐 기분도 좋을 거야~"
아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응원의 말을 주고받는 동안 심사장에 도착했다. 주차장엔 이미 차들이 빼곡했고 여기저기 도복 입은 아이들이 줄지어 입장하고 있었다. 많은 인파를 따라 심사장에 입장하는 순간, 많이 본듯한 익숙한 환경과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 모습은 순식간에 나를 20년 전 어느 날로 데려다 놓았다.
내 남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태권도를 배웠다.
중학교, 고등학교도 운동부 선수 생활을 했고, 대학교 역시 태권도 특기생으로 입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엔 전국 소년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태권도 유망주이기도 했다. 잦은 부상과 대진운 없음으로 실업팀 선발이 뜻대로 안 되자 장교로 군에 입대했고 그렇게 태권도와의 인연도 끝이 났다.
젊은 시절 태권도 선수 생활을 잠깐 하셨던 아빠는 동생이 초등학교 입학하고 얼마 안 가 태권도를 가르치셨다. 사실 나도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 했는데 아빠께서 내가 공부에 소질이 있는 것 같다며 시켜주시질 않았다. 내가 임용시험에 연거푸 떨어지고, 동생이 끝내 태권도로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을 때 아빠는 "쟤가 아니라 쟤 누나를 운동시킬 걸 그랬어.."라며 본인의 선택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내가 임용시험에 붙자, 공부시키길 잘했다고 금세 말을 바꾸기도 하셨다.
남동생과 나는 두 살 터울이다. 내가 고3일 때 동생은 태권도부로 유명한 한 고등학교에 스카우트가 되어 입학했다. 안 그래도 없는 살림에 운동하는 아들과 공부하는 딸 둘 다 뒷바라지하기는 힘들다며 아빠는 동생을 지원해 주기로 하셨다. 고3임에도 학원은커녕, 문제집 값도 없어 선생님이 주시는 교사용 문제집 받아서 공부할 때 동생은 시합 나간다고 새운동화와 도복을 샀다. 그땐 나도 예민한 시기라 좋은 마음으로 이해해주질 못했다. 표정을 숨기지 못해 아빠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입이 댓 발 나왔다며 누나가 돼서 지 동생을 시기한다며 지청구를 듣기도 했다. 그러면 그게 또 서운해서 눈물이 났다. 그 시기는 그랬다. 봉선화 꽃처럼 누가 건드리기만 해도 툭하고 터져버릴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근처 체육관에서 동생의 태권도 시합이 열렸다. 고3이라 주말에도 학교에 나가 자습을 할 때였는데 시간 되면 선생님 허락받고 잠깐이라도 보고 가라고 했다.
'고3인 내가 동생 시합하는 걸 보러 가야 해? 내 코가 석자인데?'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궁금하기도 하고, 잠시 머리도 식힐 겸 선생님께 허락을 구하고 동생 시합을 보러 왔다.
그날도 하얀 도복을 입은 선수들과 그들을 응원하러 온 가족들이 관중석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엄마, 아빠뿐 아니라 할머니, 형, 동생까지 온 가족이 총 출동하여 꽃다발을 들고 한마음이 되어 응원하러 온 것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동생을 응원하러 온 것은 아빠와 나 우리 둘 뿐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꽃이라도 사 오는 건데...'
곧이어 동생 차례가 되었고, 하얀 도복에 빨간색 보호구를 착용한 동생이 입장했다. 호각소리가 나자 겨루기가 시작되었다. 상대방의 공격에 동생이 맞자 처음에는 깜짝 놀랐다. 그러다 자꾸 맞으니까 나중엔 눈물이 났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두 주먹과 온몸이 뻣뻣해질 만큼 힘이 들어갔다. 경기가 끝나고 힘이 풀리니 내가 맞은 것처럼 온몸이 아파왔다. 그렇게 눈앞에서 동생이 경기하는 것을 직접 보고 나니 동생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합이 끝나고 아빠가 말씀하셨다.
"매번 시합 때마다 다른 친구들은 가족이 전부 응원하러 오는데 맨날 나 혼자 와서 썰렁하게 있다 가는 게 네 동생에게 미안해서.. 공부하는데 오라고 해서 미안하다."
생각해 보니 동생은 초등학교 졸업식에도, 중학교 졸업식에도 아빠랑 단둘이었다. 표현이 서툴고 무던한 성격인 동생은 어릴 적부터 앓는 소리 한 번 안 하는 아이였다. 반면 나는 샘도 많고 눈물도 많고 까탈스러웠다. 하고 싶은 것은 어떻게든 하고 마는 성미였다. 가족들은 동생보다 내 비위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바빠서 동생 담임 선생님께는 못 가도, 우리 담임 선생님께는 인사드리러 왔다. 그러지 않으면 내가 또 몇 날 며칠을 울고 불고 할 테니까. 싫어도 싫다는 말도 못 하고 늘 가만히 있는 동생이 난 둔하고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울고 불고 티 내는 것이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방식이었다면 아닌 척 모르는 척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동생의 방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태권도는 그런 동생이 처음으로 소리 내어 원하고 바라던 것이었다.
나는 아들의 태권도 심사를 보러 와서는 20년 전 소년이었던 동생을 떠올렸다. 태권도가 꿈이었던, 지금은 세 아이의 아빠가 되어 태권도와 전혀 상관없는 일을 하고 사는 내 동생.
매 시합 때마다 큰 경기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을 혼자 감내했을 내 동생. 서운하다, 아프다 한마디 말도 없이 속으로 삭이며 누구보다 씩씩해 보였지만 누구보다 외로웠을 나의 태권 소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