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디즈니 플러스에 가입했다.
인성님을 보기 위해서이다.
폐인 같던 고3시절 나에게 삶의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시트콤 <뉴 논스톱> 속에 인성님이었다. 키도 작고 평범한 외모의 박경림 님과 조인성의 연애 스토리는 공상을 즐겨하던 여고생에게 좋은 소재를 제공했다. 공상 속에 나는 조인성 님을 우연한 계기로 만나 비밀데이트를 즐겼다.
인성님을 드라마에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헤어진 옛 연인과 재회라도 하는 듯 폭풍 설렘과 기대감으로 <무빙>을 시청했다.
하늘을 나는 초능력이라니.. 다른 어떤 초능력보다 인성님과 잘 어울렸다. 아내와 아들만 남겨둔 채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 인성님은 어디에 있는 걸까? 하늘 어디에선가 아내와 아들을 내려다보며 지켜주고 있겠지?
.. 우리 엄마도 하늘 어디에선가 나와 내 아이들을 내려다보고 있을까?
엄마를 못 본지가 벌써 20년이 넘었다.
내게도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돌아가신 엄마를 한 번만 만나보고 싶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엄마랑 사이가 참 좋았거나, 효심이 지극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 반대이다.
<불효자는 웁니다> 아니, <불효녀는 웁니다> 영화 주인공을 시켜줘도 될 만큼 엄마에게 잘못한 일이 많다. 그저 딸들이라면 누구나 엄마에게 갖는 미안함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그랬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아빠랑 헤어지셨다. 원인제공은 아빠였지만 난 늘 엄마를 탓했다. 그래도 자식들을 생각해서 참고 살았어야지! 내가 성적이 떨어지면 그건 엄마 탓, 내가 친구를 잘 못 사귀면 그것도 엄마 탓, 내게 생기는 모든 불행한 일... 그건 모두 엄마 탓!
자식을 버린 비정한 엄마라는 죄목으로 엄마에게 늘 가시 돋친 말을 해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어린 나에게 큰 아픔과 상처를 준 엄마에 대한 일종의 복수 같은 거였다. 부모 마음에 상처를 주는 것만이 내가 받은 상처를 상쇄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때마다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 상처들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아팠는지, 엄마는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셨다.
엄마는 그렇게, 다시 나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엄마가 이겼다.
엄마가 입원해 있던 병원 안에 큰 서점이 하나 있었다. 엄마를 간호하다가 엄마가 잠들면 혼자 서점에 가곤 했다. 거기서 정호승, 정채봉, 안도현 시인의 시집을 만났다. 그땐 시를 읽으며 마음에 위안을 얻기도 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정채봉 시인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이라는 시를 읽고 많이 울었다. 그 후로 그 시는 내 눈물버튼이 되었다.
엄마를 단 하루라도, 아니 반나절 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것도 엄마덕, 내가 열심히 살고 싶어 진 것도 엄마덕, 내가 가족을 소중히 여기는 것도 엄마덕, 이렇게 잘 큰 것도 엄마덕이라고.. 그러니 미안해하지 말라고, 감사합니다라고 꼭 전하고 싶다.
.
.
.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정채봉-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단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 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