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남매의 여행

by 슈퍼엄마

추석연휴에 남동생네 가족과 2박 3일로 평창-강릉일대 여행을 다녀왔다.


이번처럼 연휴가 길면 어김없이 남동생에게 연락을 한다.

"이번 연휴에 뭐해? 우리 여행 갈 건데 같이 갈래?"

그럴 때마다 동생은 "아~ 귀찮은데.." 하면서도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따라나선다.


어린 시절 가족과 여행을 갔던 즐거운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먹고살기 어려운 형편에 여행은 사치이기도 했고, 부모님과 일찍 떨어져 살다 보니 가족이 함께 한 추억 자체가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여행을 좋아한다. 여행을 다닐 시간과 돈이 생기면 가까운 곳이라도 훌쩍 떠나고 싶어 진다. 같이 갈 사람이 없을 땐 혼자서도 종종 여행을 떠났고, 결혼 후에도 일 년에 한 번쯤은 남편이나 시댁에게 아이를 맡겨놓고 친구들과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반면에 내 동생은 여행을 가본 경험이 거의 없다. 중학교 때부터 운동을 시작한 동생은 학창 시절에도 합숙생활을 하며 운동을 하느라 수학여행이나 소풍도 잘 못 갔다. 학교를 졸업하고는 10년 이상 군 생활을 했기에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지 못했고, 가끔 휴가를 나와도 줄곧 집에서 밀린 잠을 몰아 자며 쉴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결혼을 하고도 쉬는 날엔 거의 집에만 있는다. 올케도 밖에 나가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지 그럭저럭 불만 없이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아이들이 크면서 문제가 생겼다.

"연휴가 길어지면 너무 힘들어요. 아이들 데리고 집에만 있는 것도 힘들고 애들도 너무 심심해해요" 올케가 가끔 전화로 볼멘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동생은 평생 여행이란 걸 모르고 살아서 그런가 나갈 엄두를 잘 내지 못하고 기껏해야 동네 놀이터나 키즈카페에 가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아이가 어릴 때는 여행 한번 가려면 짐도 많고 먹는 것, 자는 것 등 신경 쓸 게 많아 나가는 게 오히려 고생이었는데, 이제 아이들이 한창 뛰어놀 나이라 집에만 있는 것이 고역이라고 했다.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키우는 내 입장에서는 충분히 이해가 된다. 오죽하면 엄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아이들의 방학이라는 소리가 나올까.


몇 년 전에는 가족끼리 제주여행을 계획하고 있는데 아빠랑 남동생 그리고 올케가 제주도를 한 번도 안 가봤다고 하길래 다 같이 가기로 했다. 그런데 서로의 여행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여행 내내 힘들었다.

나는 여행을 가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조식도 먹고 산책이나 러닝을 한다. 반면에 동생은 여행을 가서 대체 왜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거냐며 숙소에서 계속 쉬고 싶어 했다. 이동할 때마다 나가기 귀찮아하고 늦장을 부리는 바람에 참다 참다 화가 나서 "너랑 다시 여행을 가나 봐라!!"라고 큰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래도 누나 덕분에 제주도도 가보고.. 애들이랑 와이프가 너무 좋았다고 하네.."

진심인지 모를 그 한마디에 마음이 약해져 그 후에도 연휴가 되면 동생에게 전화를 해서 "같이 갈래?" 묻곤 한다.


여행을 가면 여행 동선과 숙소 그리고 맛집까지 전부 내가 알아보고 계획하고 예약을 한다. 동생네 가족은 몸만 따라올 뿐이다. 그런데도 매번 "귀찮은데.."소리를 달고 따라나선다.

그렇게 해서 이번 긴 추석 연휴도 함께 여행을 가게 되었다.

우리 집 아이 둘에 조카가 셋이라 애들을 무려 5명을 데리고 다니는 여행이라 사실 편안한 여행은 아니다. 사람이 많다 보니 숙소를 잡는 것도, 식당에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게다가 3세부터 9세 사이의 아이들 5명을 모아놨으니 어딜 가나 주위의 이목을 끈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아이들이 제법 커서 저희들끼리 잘 놀아 그것을 바라보는 것이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되었다.

이제 카페에 가서도 저희들끼리 한 테이블을 차지하고 앉아 서로 내꺼가 맛있네. 네꺼 좀 먹어보자 하며 메뉴도 즐길 줄 알고, 개떡같이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저희들끼리 대화를 이어나가는 게 여간 신기한 게 아니다.

강릉 밤바다에 다섯 명의 아이들을 끌고 나왔더니 그야말로 악동들이 바다를 점령한 모습이었다.


열심히 뛰어놀아 피곤했는지 평소보다 아이들이 일찍 잠이 들면 어른들만의 시간이 주어진다. 넷이 모여 술잔을 기울이며 사는 이야기, 아이 키우는 이야기 등을 하다 보면 나중엔 나와 동생의 어린 시절로 이야기는 거슬러 올라간다. 동생은 그 시절엔 억척스럽고 잔소리 많은 누나가 싫었다면서 그래도 제일 믿고 따르는 사람이 누나라는 말을 잊지 않는다. 많이 싸우기도 했지만 알고 보면 의지할 곳도 오직 우리 둘 뿐이던 시절이었다.

공부랑은 담쌓고 그저 운동만 할 줄 알았던 철부지 남동생이 이젠 세 아이의 아빠이자 어엿한 가장 노릇을 하는 모습에 괜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세월이 지나 서로의 가족과 함께 여행을 다니는 이 시간들이 가끔은 신기하고 또 한편으론 감사하다.


"그때 누나가 잔소리가 좀 심했는 줄 아냐?? 내가 많이 참아준 줄이나 알아!"

"야, 됐고! 넌 내덕에 사람 된 줄이나 알아~"

박남매의 옛이야기로 여행에서의 밤은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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