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많다. 어릴 적부터 친구들이 하는 것은 다 하고 싶었다. 그러나 초등학교 1-2학년때 피아노 학원을 잠깐 다닌 것 말고는 특별히 뭔가를 배워본 적이 없다. 배우는 일에는 돈이 들었다. 내가 뭔가를 배우고 싶어 할 때마다 기특해하기보다는 돈걱정이 앞서는 엄마를 보면서 학원은 언감생심이란 걸 알았다.
그러다 딱 한번..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를 졸라댄 적이 있다.
미술 시간에 선생님께서 잘 그렸다며 칭찬해 주셨다. 환경 미화 꾸미기를 할 때 내 그림을 교실 뒷 벽에 전시해 주셨다. 만화를 좋아해서 캐릭터를 따라 그리곤 했는데 친구들이 좋아해 줬다. 나도 그려달라며 부탁하는 친구들 앞에선 뭐라도 되는 듯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다.
이번에는 엄마도 거절하기 어려웠는지 보내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언제?? 언제부터 다니면 되는데??"
"다음 달부터.."
그새를 못 참고 학교가 끝나면 미술 학원 앞을 얼쩡거리며 유리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어느 날 원장님이 부르셨다.
"무슨 일이니?"
"아. 네 저 여기 다닐 거거든요!"
"아. 그래?? 그럼 들어와서 구경할래?"
곧 원생이 될 거라 생각해서인지 음료수도 챙겨주셨고 난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물어봤다.
그리고 다음 달이 되었지만 엄마는 또 '다음 달'엔 꼭 보내주겠다고 말했고 몇 번의 다음 달이 지나고 난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리고 원장님을 마주치게 될까 봐 미술 학원 근처엔 두 번 다시 얼씬도 하지 않고 멀리 돌아다녔다. 원장님이 날 거짓말쟁이라고 생각할까 봐 무섭고 슬펐다.
해마다 학교에서는 기초조사서에 취미랑 특기 장래희망 등을 쓰게 했다.
뭐라고 써야 할지 한참 머뭇거리다 주변 친구들이 쓰는 걸 슬쩍 훔쳐봤다.
피아노 치기, 컴퓨터 게임하기, 음악감상...
'피아노와 컴퓨터는 물론이고.. 하다못해 워크맨도 없는데..
아 취미생활엔 돈이 드는구나. 돈 안 드는 취미는 없나?!'
이런저런 생각 끝에 취미란에 '독서'라고 적었다. 책 읽는 데는 돈이 들지 않아서 좋았다. 도서관에 가면 그 수많은 책이 모두 무료이다. 책 읽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그때부터 더 열심히 읽었던 것 같다. 마치 쓸 게 없어서 적은 것이 아니라는 듯 적극적으로 읽었다. 그러다 보니 '문학소녀'라는 소리도 좀 들었다.ㅎ
초등학교 5학년때 방학숙제로 낸 일기를 보시고 담임 선생님이 '문예부'에 들어오지 않겠냐고 했다. 그게 뭐 하는 데냐고 물었더니 동시도 쓰고 이야기도 짓는다고 하셨다.
글을 쓰는 데도 돈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수업이 끝나면 학교에 남아서 선생님과 글쓰기를 했다. 그때 선생님이 책을 한 권 사주셨다. '이오덕 글쓰기'라고 적혀있었는데 너무 웃긴 이름이라고 생각했다. 이름을 들으면 '오리'가 떠올랐다.
그렇게 독서와 글쓰기는 오랜 시간 동안 나의 '취미란'을 채워줬다. 아 그리고 그림도 틈틈이 그렸다. 비록 연습장에 연필로 끄적이는 그림이었지만 내가 그린 만화를 친구들이 돌려보는 게 즐거웠다.
생각해 보니 그때부터였다.
난 돈이 없다고 배우는 일을 포기하거나 아무것도 하지 않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찾아왔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가진 것이 부족해도 즐겁고 풍성한 인생을 사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내가 해온 취미 생활들에 대해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취미생활을 돌아보면 내가 나를, 내 삶을 좀 더 잘 알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