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취미 생활

미술 동아리 꼴로르

by 슈퍼엄마

대학생활의 시작을 알리는 3월.

동아리 가두모집으로 캠퍼스는 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생기를 띄며 북적거렸다. 그 사이를 선배들의 호객행위로 신입생 대접을 톡톡히 받으며 누비고 다녔다.


그때,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정밀묘사로 그린 초상화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미술동아리 꼴로르'

오직 연필하나로 명암을 이용해 실물과 흡사하게 그림을 그려낸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림을 그릴 때 색칠하는 것보다 스케치하는 것을 더 좋아해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림 앞에서 한창 구경하고 관심을 보이니 선배들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가입신청서'를 내밀었고, 그렇게 미술동아리 꼴로르 5기 멤버가 되었다.


미술동아리를 한다고 하니 친구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그걸 어따써?!'였다. 괜히 시간낭비 하는 거 아니냐며 스펙에 도움이 되는 영어회화나 자격증 관련 동아리에 가입하자고 했다. 아니면 학과 공부에 도움이 되는 문학 관련 동아리나.


그랬다. 이제 와서 미술이라니..

하지만 초등학교 시절 배우고 싶던 미술에 대한 한(?)이라도 남았는지 그렇게 미술 동아리방을 제 발로 찾아갔다.

몇몇 선배들이 신입생의 방문을 격하게 반겼다. 그날 이후로 난 수업이 없는 공강시간이나 점심시간엔 동아리방에 자주 들렀다. 그럼 선배들이 그림을 가르쳐주었다. 선배들 중에 미술과는 한 명도 없었다. 전부 아마추어들이었다. 그러나 그림에 대한 태도만은 진지했다. 처음엔 연필로 선 긋는 것부터 시작했다. 주야장천 선긋기만 하면서 '저런 멋진 그림은 언제 그리나..'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러나 선배들이 연습한 어마어마 한 양의 스케치북을 보면서, 그리고 그림에 대한 선배들의 애정 어린 마음을 느끼면서 나도 묵묵히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때부터 그림 그리기가 취미 생활이 되었다. 틈만 나면 그림을 그렸다. 종이와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되니 특별한 준비도 필요 없었다. 연필과 종이 냄새 가득한 동아리방도 좋았다. 가끔 음악을 틀어놓고 다들 각자 자기 그림에 몰두하곤 했는데 따로, 또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열심히 동아리 활동을 한 끝에 2학년땐 동아리 회장을 맡기도 했다.


실력이 부족한데 후배들이 생겼다고 내가 그림을 가르쳐주는 일도 생겼다. 그럴 때마다 사이비 같다는 마음에 약간의 죄책감이 들기도 했지만 덕분에 그림 실력은 더 느는 것 같았다.

동아리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전시회를 열었다. 1학년때는 구경만 했지만 이젠 내 작품도 전시를 해야 했다. 2학년이 되어서는 동아리방에서 아주 살다시피 했다. 그 결과 친구들과 지인들의 축하를 받으며 두 번의 전시회에 작품을 걸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벅차고 짜릿한 순간이었다.

요즘 대학생들은 동아리 활동을 잘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럴 시간에 스펙 쌓기나 취업준비에 몰두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인 대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내가 그때 그림을 그릴 시간에 스펙 쌓기나 전공 관련 공부를 했으면 더 좋았을까?!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동안 본캐와 부캐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본캐는 나의 본업과 관련된 캐릭터이고, 부캐는 본업과 전혀 상관없는'딴짓'을 하는 캐릭터이다. 딴짓을 할 시간에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캐는 오히려 본캐를 더 잘할 수 있는 활력소가 되어주기도 하고 내 안에 다양한 모습을 꺼낼 수 있는 기회를 주어 삶의 재미를 찾는데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본업과 관련 없는 '딴짓'을 할 때 오히려 창의성이 높아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본업 이외에 취미생활을 갖는 것은 매우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내 전공과 전혀 무관한 그림 그리기를 통해 학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도 해소하고, 다양한 친구, 선후배를 만날 수 있었으며, 전시회를 통해 성취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어릴 적 그림을 배우고 싶었던 한을 풀기도 했다.


나는 졸업하고도 10년 정도 매년 후배들의 전시회에 초대를 받아 모교에 가곤 했다. 그때마다 동아리실에 들르곤 했는데 연필과 종이 냄새는 변함없이 그대로였다. 그 냄새를 맡으면 다시 2003년으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 들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부터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는데 글을 쓰다 보니 그 냄새가 무척 그립다.

오드리햅번과 20년 젊은 차태현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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