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이 엄마의 부재로 엄마의 정이 고팠던 나는 아이가 태어나면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열정이 가득했다.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아빠 목소리를 들려주면 좋대."
남편을 닦달해 태교 동화를 읽게 하고, 태교 일기를 쓰며 뱃속의 아이와 대화를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100일쯤부터는 매일같이 눈을 맞추고 책을 읽어줬다. 주말마다 공룡을 보고, 곤충을 보러, 물고기를 보러 다녔다. 웃는 아이를 보면 행복했지만 아이가 잠들고 나면 가끔 허전했고 때때로 우울했다. 그러나 그런 감정이 드는 건 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더욱 노력했다. 부정적인 감정은 내 안에 욱여넣고 좋은 것만 아이에게 주려고 했다. 무리하면 탈이 나는 법. 그렇게 눌러 담은 화는 한 번씩 터졌고, 그런 날엔 남편도 아이도 나도 셋다 불행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행복하지 않은 엄마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육아서 대신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말엔 내가 가고 싶은 곳엘 가고, 남편에게 아이를 맡기고는 종종 혼자만의 시간도 보냈다. 그렇게 나는 잃었던 생기를 조금씩 찾아갔다.
그맘때 학교를 옮겼다. 새로 옮긴 학교에서는 그동안 관심이 많았던 독서 교육에 대해서 깊이 공부하기 시작했다. 한창 일에 빠져 재미를 느끼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둘째를 갖게 되었다. 기다리던 일인데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육아를 다시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둘째를 키울 땐 좀 달라지기로 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그 말을 방패 삼아 종종 내 시간을 가졌다. 그러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아이에게 소홀해졌다. 그리고 그게 익숙해져서 인지 언젠가부터 아이들과 같이 있을 때에도 다른 일에 몰두하는 날이 늘어갔다.
놀아달라는 둘째에게는 "오빠랑 놀아"
심심하다는 첫째에게는 "동생이랑 놀아"
남편이 있는 날은 "아빠랑 놀아."
남편보다 내가 집안일을 많이 한다는 이유로 육아는 남편에게 떠넘기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밥 해주는 사람, 아빠는 놀아주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생활에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꼭 필요한 사람이지만 함께 있으면 즐거운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이제 첫째는 주말에도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며 혼자 나가는 날이 늘어났고, 오빠가 없으면 둘째는 자연스럽게 영상을 찾았다.나의 자유가 조금씩 늘어났지만 그만큼 허전함도 커졌다.
한 번은 가족끼리 바닷가에 다녀왔다. 아빠가 아이와 함께 물에 들어가 놀아주고 모래성을 쌓아주는 동안 나는 그들이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앉아 사진 몇 장 찍어주고는 곧바로 내 할 일에 몰두했다. 그날 아이가 그린 그림일기 속에 나는 없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며? 그래서 지금 누가 행복한데?'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제주에 온 첫날, 아이들이 잠든 새벽에 눈을 떴다. 혼자 동네라도 한 바퀴 산책하고 오고 싶었으나 깨어났을 때 엄마가 없는 것을 알고 아이들이 놀랄까 봐 혼자서는 집 밖에 나가지 못했다. 그러다 보면 아이들이 얼른 일어나서 함께 산책을 하고 싶은 마음과 아이들이 깨지않아 혼자만의 시간을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이 공존했다. 생각해 보면 이런 감정은 집에서도 자주 느꼈다. 하루종일 아이에게 화를 내다가 아이가 잠들면 아이 사진을 들여다보며 후회하고 반성하는 일... 생각해 보면 늘 그 시간에서 한 발짝씩 떨어져 아쉬워하거나 후회하며 보낸 날들이 많았다. 이젠 그러지 않기로 했다.
여름방학 내내 눈떠서 잠들 때까지 아이들은 내 옆구리를 한 자리씩 차지했다.
처음 3일간은 종종 후회하는 마음도 들었다.
'애들 어린이집 보내고, 학원 보내고 나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쉴 것... 뭐 한다고 남편도 없이 혼자 애 둘을 데리고...'
그러나 나중엔 시간이 지나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 늘어만 갔다.
엄마로 사는 것과 나로 사는 것은 다른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엄마로 사는 것은 희생과 인내를 요구하고 나로 사는 것은 자유와 방종을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엄마도 나의 부분이고, 엄마로서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나 스스로도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육아를 하면서 스스로 자신감과 자부심을 느끼면, 그때 아이는 짐이 아니라 내게 날개가 되어준다.
그렇게 올여름, 나는 함께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방학이 끝나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과 휴전을 반복한다.
변한 게 있다면 매시간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함께 있을 때 혼자이길 원하지 않고, 혼자 있을 때 아이에게 미안해하지 않는다. 혼자 있을 땐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즐겁게 보내고, 함께 있을 때 역시 그 시간에 집중한다. 그렇게 '따로 또 같이' 즐기는 법을 알아갔다.
검게 그을린 피부 탓인지 두 아이 모두 여름방학 동안 부쩍 큰 느낌이 든다. 눈으로 확인하긴 어렵지만 아이가 자란 만큼 내 마음도 조금 자랐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