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내 인생 첫 알바

by 슈퍼엄마

초등학교 다닐 때 비디오 대여점, 책 대여점 등이 유행이었다. 작은 시골마을이었는데도 세 군데 정도 생겼던 걸로 기억한다. 책 대여점은 만화방과는 다르게 만화책뿐 아니라 소설책, 판타지, 잡지까지 다양한 책을 대여할 수 있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꼭 책방에 들렀다. 그때 본격적으로 만화책에 눈을 뜨기도 했다. <꽃보다 남자>, 천계영의 <오디션>, 이미라 <인어공주를 위하여> 등 정말 주옥같은 명작들을 그곳에서 만났다. 사실 책을 빌려 읽고 싶어도 돈이 없었기 때문에 사촌언니를 따라 책방에 가서 언니가 책을 빌리면 언니네 집에 가서 그걸 같이 읽곤 했다.

책방에는 가게 안에 작은 방이 달려있었는데 그 방에는 어린아이 두 명이 엄마(주인아주머니)가 바쁘게 일하는 동안 간식도 먹고 티브이도 보며 지내고 있었다. 하루는 아이들이 심심한지 책방으로 나와서 보채기 시작했고 주인아주머니는 하교 길에 몰려드는 아이들로 분주한 나머지 "엄마 바쁘니깐 얼른 들어가"라며 야단을 치셨다. 그때 그 아이들이 귀여워서 다가가 몇 마디 건네었다가 아이들과 놀아주게 되었다.


그날 주인아주머니가 한 가지 제안을 하셨다. 아이들이 하교하는 시간 즉 책방이 한창 바쁠 시간에 2~3시간 정도 아이들과 놀아주고 돌봐줄 수 있겠냐고. 그 대신 2~3천 원 정도 용돈을 준다고 하셨다. 그리고 읽고 싶은 책도 마음껏 빌려가도 된다고 하셨다. 주인아주머니는 매일 사촌언니를 따라와 열심히 책을 구경하면서도 책을 한 번도 빌려가지 않는 나의 처지를 짐작하셨던 것 같다. 그게 내 인생의 최초의 알바이다. 그렇게 매일 하교 후에 책방에 들러 가겟방에 들어가 아이들과 놀아주고 티브이도 같이 봐주고 간식도 챙겨주었다. 알바가 끝나면 읽고 싶은 책을 잔뜩 대여해서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하루는 엄마가 무슨 돈이 있어 저렇게 책을 많이 빌려오나 싶으셨는지 물어보셨다. 엄마가 공부는 안 하고 쓸데없는 짓 한다고 혼내실까 봐 사촌언니의 책을 빌려온 거라고 둘러댔다. 그러나 사촌언니가 엄마에게 사실대로 말하는 바람에 들키게 되었다.


"곧 있으면 중학교 가는 애가 공부나 하지 않고 뭐 알바?? 애를 봐줘?? 당장 그만두고 공부나 해!"


다른 친구들은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학교 끝나면 학원 가고 공부하는데 나는 책방에서 가서 애들 봐주고 돈을 받아온다는 게 속상했는지 매우 화를 내셨다. 그것도 모자라 책방 주인아주머니가 어린애를 꼬드겨 일을 시킨 것이 괘씸하다고 생각하셨는지 찾아가 따진다는 것을 겨우 말렸다. 그리고 나 역시 속상한 마음에 엄마에게 큰소리로 대들었다.


"엄마는 내가 원하는 것도 사주지 못하면서 내가 일해서 보고 싶은 책 본다는데 왜 그것도 못하게 해?"


그날 밤, 방에서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우리 엄마는 나보다 더 우셨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나중에 책을 둘러싼 책장이 있는 서재가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고.

읽고 싶은 책, 좋아하는 책들 잔뜩 꽂아주고 두고 읽고 싶다고.


지금 우리 집에는 책이 정말 많다. 그때의 그 바람대로 책이 가득 둘러싼 책장이 있는 서재도 있다. 이제는 늘어나는 책을 감당하기 힘들어 전자책을 이용하거나 한 번씩 책장 정리를 하여 누군가에게 주거나 팔기도 한다. 우리 집에는 내 책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 책도 정말 많다. 그렇지만 닌텐도, 레고, 헬로카봇 로봇이 종류별로 있는 아이에게 책은 그다지 매력적인 존재가 아닌듯하다. 장난감은 특별한 날이 아니면 잘 사주지도 않고 애원을 해야 하나 겨우 얻을 수 있는데 비해 책은 말하지 않아도 언제든 사서 책장을 가득 채워준다. 그러니 책에 대한 간절함이 있을 리 없다.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나는 결핍으로 인해 책이 더욱 간절했던 것 같다. 그래서 책 한권만 사줘도 뛸 듯이 기뻐했고 읽은 책을 여러 번 읽고 구김 없이 소중히 간직했다. 요즘은 책이 차고 넘치는 세상이다. 그래서 더 귀한 줄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적당한 결핍은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알아가는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한다. 내 아이에게 사랑만큼은 부족함 없이 주고 싶지만 적당한 결핍으로 스스로 뭘 원하는지 알 기회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 시절 하필 내가 원하는 것이 책이어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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