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MZ세대들은 안정적인 직장 생활보다 개인 사업을 더 선호한다고 한다. 갈수록 커지는 자산의 격차를 따라잡기 위한 방법일까? 그래서 재테크 역시 저축보다는 투자를 더 선호하나 보다. 요즘은 무자본 창업, 온라인 사업이라는 말도 흔하게 들리고, 그래서 한때는 '퇴사'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내가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직업 선호 1순위는 공무원이었다. 공무원 경쟁률이 해마다 신기록을 경신하던 때였다. 직업에 있어서 무엇보다 '안정성'을 중요시했던 내 또래들은 선호하는 배우자의 직업으로 전문직이나 공무원으로 손꼽았다.
그러나 난 사업하는 남자가 좋아 보였다. 진취적이고 도전정신이 강할 것 같아 보여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난 사업하는 남자 불안해서 싫더라~"
"왜? 비전 있고 멋있잖아?!"
"그러다 잘못해서 망하기라도 하면 어쩌니?!"
"그럼 내가 먹여 살리지 뭐!!"
친구들은 내가 순진해서 세상물정 모른다고 걱정하기도 했고 낭만이 있어 부럽다고도 했다.
나는 친구에게 자영업 하는 남자를 소개받았다. 남자 쪽 부모님은 내가 교사라 좋아하셨다고 했지만 우리 집에서는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부모님 역시 전문직이나 나와 같은 교사를 만나기를 바라셨다.
"내 직업이 안정적이니 남자는 좀 불안정해도 괜찮죠! 직업이 뭐가 중요한가요? 사람이 중요하지!!"
그때 나의 말은 오기였을까? 사랑이었을까?
사업 초기에 남편과 연애를 했고, 남편은 주말에도 일 때문에 바빴다. 늘 기다리는 건 내 몫이었다. 그래도 열심히 한 덕분에 사업이 한창 잘 될 때 결혼을 했다. 그러나 아이가 돌쯤 되어 남편이 하던 일이 잘 안 되어서 음.. 한마디로 망해버렸다.
돌쟁이 아이를 키우면서 2년 정도 휴직을 계획했던 나는 서둘러 복직을 해야 했고 남편은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했으므로 우린 주말부부가 되었다.
시어머니는 남편도 없이 돌쟁이를 데리고 어떻게 직장을 다니냐며 아이를 맡기라고 하셨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서둘러 아이랑 둘이 살 집을 구하고 어린이집 적응 기간도 없이 바로 복직을 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겨놓고 출근했다가 퇴근과 동시에 아이랑 잠들 때까지 육아가 이어졌다. 그때는 아이가 너무 어렸고 잘 떨어지지 않아 화장실도 편하게 못 갈 때였다. 그러나 서로가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버텨준 덕에 남편은 내가 있는 지역으로 와서 다시 재기를 꿈꿨다.
남편은 아침 일찍 나가고 밤늦게 들어왔다. 퇴근시간은 따로 없었다. 주말에도 출근을 했고 영업을 하지 않는 날도 할 일이 있다며 늘 나갔다. 나같이 정시 출근, 정시 퇴근하고 빨간 날은 전부 쉬는 속 편한 사람은 자기들의 고충을 모른다며 늘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나는 퇴근을 하고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육아와 집안일을 혼자 해내야만 했다. 내 시간은 너무 없었고 이때 나는 많이 지치고 외로웠다.
가끔 일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면 "그래도 너는 '철밥통'이잖아~ " 또는 "넌 방학이 있잖아~"라는 말로 나의 모든 힘듦을 퉁치려고 했다. 그리고 남편 역시 '너는 이해하지 못한다'며 애초에 바깥일을 집에서 얘기조차 하지 않았다.
내가 방학이라도 하면 남편은 그나마 하던 집안일에서 일절 손을 놓았다. 육아와 집안일은 너무 당연하게 내 몫이었다. 난 가끔 억울했다. 아니 좀 많이.
그러던 중 코로나가 닥치면서 남편이 운영하던 스포츠 센터에 타격이 왔다. 감염자가 나올 때마다 업장은 문을 열고 닫고를 반복하다 직원들이 그만두게 되고 여러모로 운영을 유지하기 힘들어지자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그렇게 남편은 일을 쉬게 되었다.
평일은 물론 주말에도 밤낮으로 센터에 붙어있던 사람이 정작 갈 곳이 없어진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정말 내가 남편을 먹여 살리는 날이 왔다.
나도 막막했지만 남편은 오죽할까 싶었다. 안 그래도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데.. 기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요즘엔 남자들도 육아휴직 많이 하잖아~ 난 남편이 육아휴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웠다고!! 당신도 이참에 육아휴직한 걸로 하자!!"
남편은 일을 쉬는 동안 아이들 등하원을 맡게 되었다. 아이들은 평일엔 아빠 얼굴도 거의 못 보고 지냈는데 아침저녁으로 아빠가 있으니 너무 좋다고 했다. 나 역시 아이들 하원하느라 마무리 짓지 못한 일을 쌓아두고 허겁지겁 퇴근하고 다음날 쌓아둔 일을 해치우느라 정신없이 지냈는데 이제 서둘러 퇴근하지 않아도 되니 여유가 생겼다. 여유를 부리는 김에 아예 퇴근하고 운동까지 하고 들어왔다. 그럼 남편은 아이를 하원시켜 씻겨놓고 저녁까지 준비해 두었다. 결혼생활 이후 처음으로 독박육아에서 벗어났다.
이때 통장잔고는 바닥나고 있었지만 내 영혼은 확실히 살찌고 있었다. 캠핑도 이 시기에 시작했다. 주말도 없이 보냈는데 내가 퇴근하고 금요일저녁부터 일요일까지 캠핑장에서 보냈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남편도 행복해 보였다.
그렇게 8개월이 지나 남편은 다시 일을 시작했다. 여전히 열심히 일하지만 주말은 가족과 함께 보내려고 하고, 하원은 내가 하고 있지만 등원은 남편이 하고 있다. 덕분에 나는 새벽에 수영을 하고 바로 출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몇 년 전 우리 지역에서 건강한 도시 만들기를 타이틀로 시에서 운영하는 커다란 체육 시설을 4군데 짓겠다고 발표를 했다. 그리고 오늘, 남편의 사업장 근처에 센터가 오픈을 했다.
직원분께 듣기로는 벌써 사람들이 많이 빠져나갔다고 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거라 비용도 저렴하고 새로 지었으니 시설도 좋을 것이고, 집이 가까운 사람들은 안 갈 이유가 없어 보였다.
'아. 이번에도 또 한 차례 파도가 오는 것인가...'
자영업자 남편과 사는 일은 안정을 포기하고 언제 닥쳐올지 모르는 시련에 대비하는 삶을 사는 일이다.
누군가 좋아하는 고사성어 두 개를 말해보라길래 '고진감래'와 '새옹지마'라고 대답했다. 인생은 말한 대로 흘러가나 보다. 그래서인지 내 인생을 돌아보면 한 순간도 평탄하거나 거저 주어지는 게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한편으론 늘 고생 끝에 낙이 왔고, 힘든 일 이후에는 위기가 기회가 되는 적도 많았다.
이번에도 파도를 잘 넘어보자고, 나는 이번에도 걱정 안 한다고!! 말하는 대신 오늘 아침엔 남편에게 '파이팅!!'이라고 문자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