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들은 말인데 좋아하는 것이 많을수록 인생을 재미있게 살 수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생각해 보면 난 내세울 것 하나 없이 지극히 평범한 데다가 인생을 돌아보면 기쁨보다는 슬픔의 양이 좀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주위사람들에게 "넌 인생을 참 재밌게 사는 것 같아." "늘 즐겁고 재밌어 보여~"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그 이유가 뭘까 생각해 보니 늘 무언가 내가 재미있어할 만한걸 끊임없이 찾고 그런 시간을 자주 가지려고 애썼기 때문인 듯하다.
지난번에 대학시절 미술동아리에 가입하면서 취미로 해온 초상화 그리기에 이어서 오늘 이야기할 취미는 바로 퀼트이다.
퀼트는 바느질을 활용해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드는 것이다. 이 취미생활을 처음 하게 된 것은 임용고사에 합격하고 기간제로 근무할 때이다. 시험에 합격했지만 2학기 발령이라 시간적 여유가 있었는데 놀면 뭐 하나... 하는 생각으로 1학기 짜리 기간제 교사로 일을 했다. 그때 내 옆자리에는 미술 선생님 자리였다. 그 당시 아이가 고3이랬는데 마흔 후반쯤이셨을 것 같다. 선생님은 색상이나 모양이 특이한 가방이나 모자 등의 소품을 자주 가지고 다니셨다. '미술 선생님이라서 패션 센스가 남다른가?' 생각하며 물었다.
"어머~ 선생님 이런 건 어디서 구입하세요? 패턴이 참 독특하네요?"
"이거 내가 직접 만든 거야~"
"선생님께서 직접이요?? 우와 대단하세요"
"퀼트라는 건데 이거 별거 아냐. 쉽고 재밌어~"
내가 관심을 보여하자 본인이 다니는 공방에 퇴근 후 같이 가보자 제안하셨고 그렇게 따라갔다가 퀼트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가만히 앉아서 바느질을 한다고 생각하면 되게 답답하고 지루할 것이라는 생각과는 달리 재미도 있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내가 원하는 모양과 색깔의 천을 골라 나만의 개성이 담긴 물건을 만든 다는 것도 매력이 있었고 소품을 하나하나 완성할 때마다 성취감을 느꼈다.
십 년 전에 남긴 기록이다. 퀼트로 완성한 작품을 찍어 카카오스토리에 올리곤 했다.
밤 12시까지 바느질이라니..;;
카드 지갑은 좋아하는 지인에게 선물로 주기도 했다. 받는 사람들은 이런 취미가 있냐며 하나같이 놀라곤 했다. 천방지축인 줄 알았는데 이런 반전매력이 있었냐면서 말이다. ㅎ
배냇조끼와 수놓기
사실 나는 낯가림도 거의 없고 처음 만난 사람과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도 잘한다. 학교 축제나 소풍 때는 앞에 나가 장기자랑을 할 만큼 남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고 주말에는 거의 집에 붙어있지 않다. 이런 내가 가만히 앉아 초상화 그리기에 이어 취미로 바느질을 한다고 하면 나를 아는 주변사람들은 정말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디 가서 취미가 독서랑 바느질이라고 하면 소개팅용 말고 진짜 취미를 말해보라며 두세 번 묻기도 했다. ;;
예전에 "내 속에 내가 너무도 많아~"라는 노래 가사처럼 나는 사람 안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느 한 가지로 자신의 규정해 버리고 또 거기에 맞는 이미지를 계속 쌓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나다움'을 규정하고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게 안전하다고 여기는 듯 하다. 그러나 막상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면 나의 새로운 면을 알게 되기도 하고, 의외의 재미를 발견할 수도 있다.
나는 모임과 만남을 좋아하는 외향적인 성향이지만 혼자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을 하는 것도 좋아한다. 오히려 그런 혼자만의 시간들 때문에 밖에 나가 더 즐겁고 신나게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내 안에는 사람들과 친밀함을 느끼고 싶어 하면서도 한편으론 나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혼자 하는 취미생활이 나의 그런 마음을 채워줬던 것 같다. 이런 취미생활을 통해 나는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리고 평소 급하고 덜렁대는 성격인데 집중력, 꼼꼼함, 차분함 등을 필요로 하는 취미들이 나의 성격을 보완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내가 학생들에게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가
"제가 뭘 좋아하는지, 뭐가 하고 싶은지 모르겠어요."이다.
무언가를 결정하기에 앞서 탐색하는 시간은 무척 중요하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런 탐색의 시간을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쪽으로 진로를 결정하지 않을 건데 그건 왜 배우나?" 하는 식이다. 그리고 해보기도 전에 이건 나랑 맞지 않는다고 선을 그어버리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빨리 달리기가 인생의 목표라면 우릴 기다리는 것은 오직 죽음뿐이 아닌가? 천천히 가고 돌아가더라도 좀 더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그 과정에서 즐거움을 자주 느낀다면 그런 인생도 괜찮지 않을까?
세상엔 실제로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막상 해보면 생각지 못한 일이 재미있는 경우도 꽤 있다. 그리고 해보고 아니면 그때 그만둬도 늦지 않는다. 그건 시간 낭비가 아니라 경험치가 레벨업 되는 것이다.
이 취미생활은 그리 오래하딘 못했는데 그 이유는.. 재료비가 꽤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속적으로 재료비가 나가거나 꾸준히 지출을 해야 하는 취미생활은 내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내가 공들여 만든 것보다 시중에 훨씬 예쁘고 값도 저렴한 물건들이 많아지면서 흥미를 조금씩 잃기 시작했다. ㅎ
그러나 전혀 시간낭비는 아니었다. 그 바느질 실력으로 우리 아이들 실밥 터진 옷이나 떨어진 단추, 떨어진 인형의 귀를 말끔하게 꿰매주고 있으니까. 엄마는 못하는 게 없다는 우리 아이들에게 나는 여전히 슈퍼엄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