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는 추억들 싣고.

by 슈퍼엄마

6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그때가 중3이었으니 이제 22살의 청년이 되었겠네. 선생님이 보고 싶어 찾아온다는 제자를 모른 척할 수가 없어서 오라고는 했지만 막상 만나면 할 말도 없고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저쪽에 덩치가 큰 청년이 보인다. 그의 얼굴에 앳된 중학생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선생님 저 알아보시겠어요?!"

"당연하지~ 그때랑 똑같은데 뭘~"

"선생님도 여전하신데요?!"


막상 만나고 나니 어색할 거라는 걱정과는 달리 반가운 마음이 컸다. 그리고 제자와 이야기를 하면서 잊고 지냈던 일들이 하나둘 기억이 나기 시작해서 많이 신기했고 많이 웃었다.


제자는 고등학교 진학 후 공부하는 게 너무 힘들어 2학년 때 취업을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생활은 거의 기억이 안 나요. 중학교 때도 3학년 때 기억뿐이고, 기억에 남는 선생님도 선생님뿐이에요"

"아이고~ 정말? 그렇게 말해주니 정말 고맙네. 선생님이 많이 혼내서 기억에 남는 거 아냐? ㅎㅎ"

"아니에요 ㅎ 선생님이 저 작가와의 만남 데리도 가신 거 기억나세요?"

"내가?? 어떤 작가인데?"

"작가님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책 제목이 <논다는 것>이었어요.


보통 작가와의 만남을 외부에서 하는 경우 독서동아리 아이들이나,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 이 아이는 그런 부류는 아니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널 작가와의 만남에 데려갔어?? 너만??"

"아뇨. 동은이랑 연욱이랑 셋이요.."

아.. 기억났다!


<논다는 것>을 쓴 이명석 작가와의 만남이 외부 기관에서 있다는 것을 알고 우리 반 세명을 데리고 가고 싶었는데 반장과 부반장이 가고 싶다 자진해서 손을 들었고 마지막으로 내가 한 명 뽑은 게 용민이었다. 용민이에게 책을 겨우 다 읽히고(다행히 얇은 책이다) 작가와 만남에 데려갔는데 용민이는 강연이 끝나자 사인을 받겠다고 책을 가슴에 품고서 줄을 섰다.


용민이는 공부에도 흥미가 없었지만 친구관계도 서툴러 트러블이 많았다. 하루가 멀다 교무실이 찾아와서 누군가를 이르거나 또는 이름을 당했다. 부모님이 늦은 나이에 늦둥이로 용민이를 낳으셨고 많이 연로하셔서 잘 챙기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며 내게 용준이를 잘 부탁한다 하셨다.

친구와 자주 다투고 공부에도 흥미가 없었지만 예의가 바르고 마음이 여린 아이였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고 관심을 가져주면 좋아질 거라 생각했었다.


"저 태어나서 끝까지 읽어본 책이 이거 하나예요. 지금도 책장이 꽂혀있는데 가끔 생각나면 읽어요!"

그 말에 괜히 울컥했다. 그때 내 마음이 아이에게 잘 전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전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없고, 지금도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용민이의 모습은 조급해 보였다.

"용민아 우리 같이 읽은 책에서 다양하게 노는 방법에 대해서 나와있잖아. 잘 노는 사람이 공부도 일도 잘한다면서.. 너 아직 군대도 제대 안 했잖아? 지금은 뭔가를 결정할 때가 아니라 경험해 볼 때인 거 같아. 이것저것 다양한 경험도 하고 다양하게 놀아봐. 여행도 가고 봉사도 하고 독서도 하고.. 그럼 좋아하는 것도 원하는 것도 지금보단 뚜렷해질 거야~"

내 말에 용만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이 처음으로 교사가 되려고 임용시험 본 게 몇 살인지 알아?"

"대학졸업하고요?"

"아니야... 선생님은 27살에 처음 임용시험 봤어. 그리고 3년이나 걸려 서른 살에 교사가 됐는걸?"

"진짜요???"

"그럼~ 나도 그땐 늦은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그러니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그렇게 용민이에게 이야기한 후 곧 5교시 수업이 있어서 서둘러 대화를 마쳤다. 용민이는 다음날이 빼빼로 데이라며 빼빼로와 음료를 건넸다. 꽤 무거웠다.

'아이고.. 고마워. 잘 먹을게."

점심시간 동안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옛 제자와의 대화 덕분에 그 시절로 잠깐 다녀온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해졌다. 20대 청년이 중학교 담임 선생님을 찾아왔다는 것은 예전이 그리울만큼 지금 일이 잘 안풀리거나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해서가 아닐까.. 생각했다. 오늘 내 말이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됐을까?

책을 읽고 함께 작가와의 만남에 다녀온 걸 기억하는 아이니까 오늘 내가 해준 말도 꼭 기억하고 잘 지낼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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