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립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by 슈퍼엄마

대학교 다닐 때 내 꿈은 방송작가였다.

라디오 작가나 개그프로 작가, 시트콤 작가 어떤 것이든 좋았다. 서울에서 열리는 작가 동호회며 모임에 뻔질나게 다닌 덕분에 주변인들 모두 내 꿈을 익히 알고 있었다.


대학교 2학년 때, 애니메이션 회사에 취직한 선배에게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우리 회사에서 스토리 작가를 구하고 있어”

‘스토리 작가’라는 말에 나는 귀를 쫑긋거렸다.

“네 생각이 나더라고.”

내 꿈을 기억해준 것만으로도 감격스러워 나는 몇 번이고 고맙다고 말했다. 그리고 선배의 요청대로 스토리 3편을 써서 이력서와 함께 보냈고 며칠 후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말 꿈만 같았다.

'아 두드리면 열리는구나!'

그러나 기쁨도 잠시, 딸이 교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님께 선뜻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몰래 휴학을 신청하고 자취방에서 친구들과 송별회를 했다.


천금 같은 기회를 얻은 기쁨도 잠시, 낯선 생활에 대한 걱정과 부모님을 속였다는 죄책감에 괴로웠다.

심란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첫차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터미널에 마중 나온 선배가 밥을 사주며 말했다.


“처음에는 일이 생각했던 것과 좀 다를 수 있어. 그래도 참고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이 보일 거야”

“선배 걱정 말아요. 그 정도 각오는 하고 왔으니까”

나는 일부러 씩씩하게 대꾸했다.

“많이 낯설고 힘들 수도 있다는 걸 꼭 명심해..”

선배가 말끝을 흐리며 또 한 번 중얼거렸다.

당분간은 선배의 집에서 지내기로 했기 때문에 선배에 대한 고마움과 충성심이 가득 차 있었다.


회사 입구에서 도착해서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이라고 걸려있는 현수막을 보는데 감격스러웠고 좀처럼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오랜 시간 꿈꿔온 일을 이제야 시작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부모님께는 죄송했지만 반드시 금의환향하겠다는 다짐을 하며 약해지려는 마음을 추슬렀다.


안내 데스크에서 가져온 짐과 핸드폰을 맡기고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시작된 오리엔테이션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오고 갔다.

'등급? 제품??'

무언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채고 선배가 서 있는 뒤쪽을 바라보았다. 선배는 나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얼른 고개를 돌렸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을 이곳으로 안내한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다단계구나!'

어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지금 내가 그 일을 겪고 있다니..

당황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섭기도 했다.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오리엔테이션이 끝나고 일주일간 합숙할 곳을 안내 받아 자리를 이동하 시작했다

그러나 믿기지 않게도 자리에 남아있는 사람은 나 하나다.

그러다 곧 알게 되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그들은 하나같이 절박했으며 현재의 생활을 정리하고 올라온 만큼 당장 돌아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나 역시 휴학을 하고 주인아주머니께 방을 빼겠다고 말해놓고, 친구들에게 취직했다고 거하게 송별회까지 하고 올라온 마당에 다음날

"알고 보니 다단계였어.."라고 말하며 돌아갈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다시 돌아가 하나씩 수습하면 되겠지..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짐을 돌려달라는 내게 그들은 일주일간 합숙을 해보고 그래도 아니다 싶으면 그때 나가도 늦지 않는다고 나를 설득했다. 설득이 통하지 않자 결국.. 생각할 시간을 주겠다는 명목 하에 사실상 나를 '감금'해 두었다.

갇혀있는 4시간 동안 별생각을 다다.

부모님도 보고 싶고 친구들도 생각나고..

그 후에 계속되는 회유와 압박 속에서도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았고 나는 결국 쫓겨나듯 그곳에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해가 뜨는 것을 보며 희망에 부풀어 이곳 서울에 온 것 같은데 밖은 이미 어둠이 짙게 깔리어있었다. 그곳을 빠져나오고 나서야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곳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사실 정말 무서웠다.

그때 선배에게 나랑 같이 돌아가자고 했지만 선배는 거절했다.

그녀에게도 절박한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돌아와서 다시 휴학을 취소하였고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한동안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마치 나쁜 꿈을 꾼 것 같았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구나.'

'참.. 원하는 대로 살기 힘들다.'

그 후로 사람에 대한 불신과 세상에 대한 원망으로 참 힘든 시기를 보냈다.


땐 그렇게 내 인생의 문을 하나 닫아버렸다.


( 2탄에서 계속..)




keyword
작가의 이전글침묵이 사라진 수업을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