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우리 둘째 공개수업 날이다. 엊그제 입학한 것 같은데 벌써 여름방학을 코앞에 두고 있으니, 세월이 참 빠르다. 둘째는 학교가 재미있다고 말하지만, 엄마의 마음은 늘 불안하다. 그래도 둘째는 첫째를 학교 보낼 때만큼 노심초사하지 않는 것을 보면 나도 많이 컸다.
어제는 초등학교 4학년인 첫째의 공개수업을 들었는데, 초등학교 선생님이 참 극한직업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오늘 둘째 수업을 보고 나니, 어제 수업 때 본 그 아이들은 선비나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수업하는 광경을 보자 티비 프로그램이 하나 떠올랐다. 바로 봉숭아 학당이다. 봉숭아 학당의 매력은 다양한 캐릭터를 보는 재미이다. 잘난 체하는 반장, 눈치 없는 오서방, 패션에 관심 많은 복학생도 있고, 다중인격을 가진 다중이도 있다. 그래도 복숭아 학당의 대표 캐릭터는 뭐니 뭐니 해도 맹구가 아니겠는가.
수업 중 선생님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사람은 누구지?” 질문을 던지자, 아이들은 “저요 저요!” 하며 강력한 레이저 눈빛을 쏘아댄다. 선생님은 우리의 맹구에게 기회를 준다.
“그래, 맹구. 말해 보자.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사람은?”
“제가 안 죽였어요!!”
기가 막혀하는 선생님을 위로하려고 오서방이 나선다.
“선생님, 맹구가 그래도 사람 죽이고 하는 애는 아니에요”
“모두 자리에 앉아!!!”
오늘 이곳, 봉숭아 학당을 방불케 하는 이 교실에도 어김없이 맹구가 등장했다. 선생님의 질문에 우리 맹구는 손만 드는 게 아니라 몸을 함께 일으키며 '저요 저요'를 외친다. 안 시켜주면 그 원망을 어찌 감당할까 걱정하신 듯 맹구에게 발언권을 준다.
그리고 그 아이는 맹구와 비슷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와하하 하하하핳”
아이들과 어머님들 모두 웃고 있지만 웃지 못하는 단 한 사람. 나야 나.
우리 딸은 내 쪽을 보며 '엄마, 나 잘했지?' 하는 표정을 짓자, 마음이 참 복잡해진다. 아이들은 평소에도 장난과 웃음이 많다. 첫째는 짓궂은 장난으로 주의를 받기도 하는데, 왜 그랬냐고 물어보면 이유는 하나다.
“애들 재밌게 해 주려고요…”
둘째도 엉뚱한 말과 코믹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 진심이다.
며느리 앞에선 두 다리 쭉 뻗고 눕지도 못할 만큼 몸가짐을 조심하는 시어머니는 두 아이들을 보며 “얘들 누구 닮았니?”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신다.
본인 아들은 너무 숫기가 없어서 웅변학원을 보냈는데, “웅변 한번 해봐라” 했더니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 그 안에서 웅변을 하더란다. 시어머니의 증언에 힘입어 남편은 무혐의 판정을 받았고, 유력한 용의자는 이제 나만 남았다.
나도 잘 모르겠다고 잡아떼기엔 찝찝한 증거가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담임 선생님이 전근 가신다고 하셔서 감사한 마음을 담아 편지를 드렸다. 선생님께서 답장을 보내 주셨는데, 그 편지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다.
"00아, 너의 꿈 ‘개그우먼’을 꼭 이루길 바란다.”
나는 개그우먼이 되고 싶었던 적이 없다. 편지를 증거로 들이민다면, "기억이 안 납니다"라고 둘러댈 수밖에.
기억이 조금씩 더 고개를 들면 이렇다.
초등학교 장기자랑 때 성대모사(전도연, 김건모)를 해서 아이들을 웃겨주었다.
중학교 축제 때 다른 친구들 아이돌 춤을 선보일 때(그것도 서로 성유리를 하겠다고 기싸움을 벌일 때), 난 단짝친구랑 2인조 그룹으로 나가 1등을 차지했다는 것이다.
아, 그 2인조 그룹은 허리케인블루이다.
이러한 기억들이 다시 떠오르자, 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이들은.. 정말 나닮았구나.”
이렇게 인정을 하고 나니 '이따가 집에 가서 보자!' 했던 마음이 누그러진다.
슬픔을 주는 것도, 아픔을 주는 것도 아닌, 즐거움을 주는게 좋다는데, 이 얼마나 기특하고 멋진 일인가. 우리 아이들의 코믹 DNA가 인생을 좀 더 재미있고 신나게 사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엄마가 물려줄 게 그것밖에 없구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