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떠난 여행, 미안하고 사랑해

by 슈퍼엄마

“시간 되면 너 다녀올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호텔 숙박권이 생겼는데 갑작스러운 일로 가지 못하게 되었다며 내게 양보한 것이다. 평일이 끼어 있어 남편은 함께 갈 수 없었다. 결국 아이 둘만 데리고 속초로 떠났다. 사실 처음도 아니다. 재작년 여름, 아이들만 데리고 2주간 제주도를 다녀온 이후로는 왠지 자신감이 붙어 아이들만 데리고 가끔 여행을 떠났다.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힘들지 않아?”
물론 남편이 있으면 육체적으로는 수월하다. 운전도 해주고,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고, 짐도 척척 옮기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혼자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 더 자유롭고 마음이 가볍다. 식사 시간도, 일정도, 동선도 내 마음대로 정하고 중간에 마음이 변해 일정이 바꿔도 동의를 구하거나 눈치 볼 일 없다. 체력적으로는 힘들어졌어도 마음은 편하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나만 하는 건 아니었다.
“엄마랑만 여행 오는 게 더 편해.”
아들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평소 아빠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빠가 자기를 더 사랑한다고 믿는 아이였기에 믿기지 않았다. 그냥 엄마 기분 맞춰주려고 예의로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아빠가 있어야 너랑 잘 놀아주지. 엄마는 잔소리만 하는데 뭐가 편해~”
“그런데 엄마 아빠랑 같이 오면 혹시 싸울까 봐 걱정돼.”

그 말에 가슴이 철렁했다.

여행 중, 남편의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할 때가 있다. 숙소 예약하고 일정을 다 정했는데 불만을 표시할 때도 그랬고, 설레고 기쁜 감정을 표현하는데 찬물을 끼얹을 때도 그랬다. 그럴 때마다 꾹 참으며 말수가 줄어드는 걸 아이는 다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싸우지 않으려 조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공기의 흐름, 말 없는 표정, 묵직한 침묵 속에서 부모의 감정을 읽어냈다. 나도 어릴 적 그랬다. 부모님의 싸움은 말보다 분위기가 먼저였다. 그런데 왜 아이는 모를 거라 생각했을까.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첫째는 이제 4학년. 제법 의젓하고 스스로 잘하는 일이 많아졌다. 손이 덜 간다. 문제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둘째. 아직도 내 눈에는 아기처럼 보이고, 오빠에게 사랑이 쏠리면 질투가 폭발한다. 오빠 칭찬 한마디에 눈물이 터지고, 엄마를 향한 애기 말투는 점점 과해진다. 둘이 함께 노는 모습은 흐뭇하지만, 싸움이 시작되면 순식간에 고요했던 마음이 뒤집어진다.

숙소에 들어서자마자 싸우고, 이르고, 울고, 화내고…
“조용히 좀 해! 싸우지 마! 한 번만 더 일러봐, 엄마 진짜 집에 간다!”
협박도, 으름장도 이제는 잘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결국 양보하는 것도 첫째고, 우는 동생 달래주는 것도 첫째다.

마지막 무기, “너희 각자 30분씩 게임이나 유튜브 봐.”
고요해진 방 안에서 나도 겨우 침대에 누워 발을 뻗어본다.


아이만 데리고 다니는 여행이 이젠 제법 익숙해졌지만, 여전히 쉽지 않다.

혼자 먹기엔 닭강정 양이 너무 많아 반도 못 먹었을 때, 맥주잔을 같이 부딪혀 줄 사람이 없을 때 남편 생각도 조금 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이제 너희 둘 데리고 여행 안 갈 거야!”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둘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럼 오빠 빼고 나랑 둘만 오자~”라고 하는데, 첫째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핸드폰 '카톡' 알림이 울렸다.

형만 한 아우 없다더니... 집에 와서 첫째를 꼭 안아주었다.


어릴 적 나도 그랬다. 장녀로서 엄마와 살림 걱정을 함께했고, 동생에게 양보하고, 질투하고, ‘동생이 없었으면’ 하다가도 막상 누가 동생을 혼내면 내가 더 속상했다. (내 동생은 나만 건드릴 수 있어.!)
그 시절 나는 고지식하단 소리를 자주 들었고, 애어른 같다는 말이 싫었다. 그런데 지금 내 첫째의 모습에서 그 시절 내가 보인다.

부모 눈치 보랴, 동생 챙기랴, 웃으며 철들어가는 아이. 기특하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하다.

저녁에 집에 돌아온 남편이 "여행 어땠어?"라고 묻는다.

엄청 맛있고, 엄청 재밌고, 엄청 좋았고.... 서로 앞다퉈가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어쩐지 다음 여행을 또 준비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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