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대한 취향

by 슈퍼엄마


이번 이사를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오랫동안 살고 싶은 집’을 꿈꾸게 되었다. 잠시 머물 집이 아니라, 나와 가족이 오랫동안 함께 살아갈 공간. 그래서 인테리어 상담도 공을 들여 시작했다. 간단히 끝날 줄 알았던 상담은 한 시간 넘게 이어졌고, 디자이너는 내 취향만 묻지 않았다. 가족들의 생활 패턴부터 지금 사는 집의 불편한 점, 내가 바라는 삶의 방식까지 세세히 물었다. 그 질문들에 답하며 나도 처음으로 나에게 되물었다. 나는 어떤 집에 살고 싶은가? 집이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사실, 나는 집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생각이 스쳐간 적은 있었지만, 늘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지나가버렸다.

중학교 때까지는 내 방이 없었다. 고등학교는 고모 집에서 다녔고, 사촌 동생과 한 방을 썼다. 대학에 가선 2인 1실 기숙사, 그리고 자취방과 고시원. 자취방 역시 돈이 부담되어 룸메이트와 함께 살았고, 친구들이 대부분 독립하던 4학년 무렵엔 신입생 룸메까지 구해 함께 지냈다. 대학원 시절엔 남동생이, 친구들이, 잠시 머물다 간 사람들로 집은 언제나 ‘함께’여야만 유지되는 공간이었다. 개인적인 취향을 담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집을 구할땐 늘 가격이 가장 중요했다. 취향은 사치였다.


결혼과 동시에 처음으로 ‘내 집’이 생겼다. 물론 명의는 남편의 것이었고, 무리한 대출로 시작한 보금자리였지만, 처음 갖는 내 집이었다. 그러나 남편 사업이 어려워지고, 나도 휴직 중이라 수입이 끊기자 결국 집을 내놓았다. 2년도 채 못살고 전세로 옮겨야 했다. 30평대 살림을 18평짜리 집에 억지로 구겨 넣었다. 이삿짐 아저씨도 짐을 보더니 어이없어했다.

그 이후로는 집에 대해 애정을 갖지 않았다. 아니, 가질 여유가 없었다. 다행히도 나는 집순이가 아니었고, 집은 잠만 자는 공간이 되곤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조금 달라졌지만 여전히 집은 실용적인 공간이란 생각이 강했다. 그저 먹고 자고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필요한 공간.

그런데 이번엔 다르다. 내게 처음으로 “살고 싶은 집”이 생겼다. 티비와 소파 대신, 거실을 북카페처럼 꾸미고 싶다.
지금
가족들이 거실의 큰 식탁에 둘러앉아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고, 보드게임을 하는 모습. 함께 웃고 대화하는 풍경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이번엔 그 모습에 욕심을 내볼 생각이다. 내게도 집에 대한 ‘취향’이 생긴 것이다.

지금까지의 집은 늘 무언가를 버텨내는 공간이었다면, 이제는 살고 싶은 삶을 펼쳐가는 공간이 되기를. 이번 이사가, 내 삶의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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