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쎄가 되고 싶어.

by 슈퍼엄마

'기존쎄'라는 말이 있다. '기 존나 쎄'의 줄임말이다.

처음엔 웃고 넘겼지만, 요즘 들어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나도 기존쎄가 되고 싶다. 말 한마디에 휘둘리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 억울한 상황에서도 목소리를 또박또박 낼 수 있는 사람. 누가 봐도 만만하지 않은 사람.


하지만 난 그렇지 않다.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 혹은 싫은 소리를 하려고 하면 마음이 먼저 요동친다. 아직 한마디도 꺼내기 전인데도 심장이 두근거리고, 관계가 틀어질까 조바심이 난다. 그리고 그 마음은 현실이 된다.

'내가 상처 준 건 아닐까,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 건 아닐까, 혹시 내가 틀린 건 아닐까…' 수많은 질문들 속에서 내 진심은 늘 뒷전이 된다.


직장에서도 그렇다. 나랑 전혀 엮이지 않은 상태에서 가깝게 지낸 상대가 나와 업무적으로 부딪히니 말투와 표정이 갑자기 단호해질 때 난 어김없이 상처를 받는다. 공과 사를 구분해야 한다는 건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이 쉽게 따라주지 않는다. 반면에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는 편하다. 이해관계가 없다는 건 그만큼 내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


어릴 땐 정 많고 눈물 많은 내가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 그래서 좋은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보니 이건 세상에 내 약점을 드러내는 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은 종종 무기가 되기도 하지만, 내겐 약점이 되어버렸다. 억울함을 이야기하고 싶은데 눈물부터 쏟아진다.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감정이 앞서버리니,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제대로 꺼내지도 못한 채 화만 가슴에 남는다.

결혼 후, 남편과 다툴 때도 마찬가지다. 억울한 마음을 말하고 싶어도 울음이 먼저 나온다. 그러면 내 말의 힘은 사라지고, 마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미성숙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 울음을 삭이고 남은 건 쌓여버린 화. 이러다 정말 화병이라도 걸리는 건 아닐까 싶은 순간도 많았다.


가끔은 아이들을 상대할 때가 어른보다 더 낫다고 느낀다. 아이들은 솔직하고, 감정이 단순하다. 오해가 생겨도 풀 수 있다. 설명하면 알아듣고, 진심을 느끼면 다가온다. 하지만 어른들과의 관계는 다르다. 겉으론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계산이 오가고, 한마디가 단단한 벽이 되어버리기도 한다.


얼마 전엔 집을 팔았다. 매수자가 끊임없이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중개사도 상대편의 편의를 더 봐주는 것 같고 내게 양해를 구했다. 집이 팔리지 않고 급한 상황이라 이미 두 배로 중개비를 주겠다고 했는데,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개사조차 미안해하며 원래대로만 받겠다고 했다. 그 말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너무 화가 났다. 내가 만만하다는 이유로 모든 부담을 짊어진 기분이었다. 그래서 잔금 치르러 갈 땐 남편을 함께 데리고 갔다. 내가 아닌, 산만한 덩치의 남편과 함께 있으니 사람들이 갑자기 예의 바르게 굴었다.

남편은 '당신 말처럼 경우 없고 이상한 사람들은 아닌 거 같은데?' 라며 나를 예민하게 여기는 눈치다.

어이가 없었다. 작고 조용한 사람은 무시하고, 위압감 있는 사람에겐 고분고분한 세상. 너무 치졸하고 짜증 나는 현실이다.


쳇 gpt에게 기존쎄가 되는 방법을 물었다.

말수를 줄이고 눈빛을 단단하게, 누가 뭐라 해도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고 한다. 내게 가장 부족한 건 그 마지막 부분인 것 같다. ‘남의 말에 휘둘리지 말고, 자기 확신을 가져라.’
'내가 틀린 건 아닐까?'
'내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 건 아닐까?'
늘 마음속에서 이런 질문들이 밀려온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바꾸고 싶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말이라도 해야 할 땐 하자. 내 마음을 누가 대신 지켜주지 않으니, 결국은 내가 지켜야 한다. 지금은 어설프고 불안하지만, 그래도 나도 기존쎄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싶다. 내가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아닌, 내 마음을 먼저 존중하는 연습부터 시작해야겠다.

여전히 심장은 쿵쾅거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말은 하자. 나에게 함부로 하는 사람에겐 이렇게 말하자.


"학~씨!!!! 너 뭐 돼??!!"


keyword
작가의 이전글집에 대한 취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