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침부터 분주했다. 청주에서 지인이 놀러 오는 날이라 서둘러 준비를 했다. 분주함 속에는 설렘과 기대가 녹아 있었다. 그녀와는 방학마다, 그러니까 1년에 두 번 만난다. 그날을 기다리는 내 마음은 칠월칠석에만 만난다는 견우와 직녀 못지않다. 그만큼 그녀와의 만남은 늘 특별하고 소중하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13년 전. 나는 임용시험에 합격했지만 2학기 발령이라 대기 상태였다. 사람들은 "고생했는데 이제 좀 쉬라"며 부러워했지만, 나는 사정이 달랐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던 나는 바로 1학기 기간제 자리를 알아봤고, 시내의 한 중학교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게 됐다. 그리고 바로 그 학교에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정식 출근 전, 교육과정 협의를 위해 교무실에 들르기 전 화장실에서 매무새를 다듬고 있었을 때였다. 나란히 거울 앞에 서 있는 그녀를 힐끔 바라봤다. 귀엽고 단정한 인상이었다. 내가 먼저 말을 걸었던 것 같다.
"안녕하세요, 올해 새로 온 국어 교사예요."
"아, 그래요? 저도 올해 처음 발령받았어요. 저는 미술이에요."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단숨에 깊어졌다.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던 우리는 퇴근 후 서로의 집에 번갈아 가며 저녁을 해 먹었고, 식사 후에는 운동 삼아 함께 공원을 걷곤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그 시간은 오래가지 않았다. 2학기가 되어 나는 강원도 원주로 발령을 받아 떠나게 됐다.
처음엔 이곳에서도 새로운 친구를 만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학교에서는 아무리 친하게 지내도 퇴근 후까지 이어지는 관계는 드물었고, 학교를 옮기면 자연스레 연락이 끊기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그녀와는 달랐다.
내가 그 학교를 떠난 지 12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단 한 해도 빠짐없이 방학마다 만나고 있다.
내 결혼식 때는 그녀가 부케를 받았고, 아이가 어릴때는 아이들과 함께 만났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된 지금, 그녀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올해는 첫째 아이 케어 문제로 내가 시간을 내기 어려워서, 그녀가 원주로 올라왔다. 점심은 우리 아이와 셋이 함께 먹었고, 이후에는 남편이 아이를 맡아주기로 했다.
"원주까지 오느라 고생했어. 방학인데 애들은 괜찮아?"
"응, 우리 남편이 점심 챙겨주고 학원도 데려다 주기로 했어. 내가 쌤 만난다고 하니까 흔쾌히 협조하더라고."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남편들의 협조와 배려로 가능했다. 그리고 그 시간은 그야말로 달콤했다.
무엇보다 그녀는 내 어떤 말에도 무한한 공감을 해주는 사람이다. F인 나에게 그녀의 말은 큰 위로가 되고, 매번 용기를 북돋아준다. 한 번도 부정적인 피드백을 준 적이 없다. 늘 지지하고 응원해 주는 그녀를 만나고 나면 마음이 가볍고 든든해진다.
이번 만남도 그랬다. 주변에서 '휴직해서 좋겠다', '이사해서 좋겠다'며 부러워하는 말을 자주 하는 바람에 '힘들다'라고 말하는 게 망설여졌던 요즘, 그녀는 단박에 내 마음을 알아챘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지, 그치?"
그 말 한마디에 울컥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준다는 것,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위로다.
그녀와 헤어지고 온 그날 저녁,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오늘 왜 이렇게 친절해? 아까 그 이모 만나서 기분 좋아서 그래?"
"응, 엄마 쌓였던 스트레스가 날아갔거든. 한동안 친절할 예정이야. 그렇다고 너무 쌓지는 말고."
자주 만나지 못해도, 멀리서 나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삶이 바쁘고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더라도, 이렇게 서로를 향한 마음이 끈끈하게 이어진다는 것. 그게 얼마나 큰 위로인지, 나이를 먹을수록 더 깊이 느끼게 된다.
소중한 인연은, 자주 보는 것보다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가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잘 가꾸고, 오래 기억하고 싶다. 그녀처럼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을, 나도 그렇게 지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