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모레면 이사를 간다. 아이들은 7월까지만 학원을 다니다가 모두 그만둔 상태다. 며칠 전 두 아이 건강검진 때문에 병원에 들렀는데, 마침 병원과 같은 건물에 전에 다니던 영어학원이 있었다. 큰아이는 학원에 들러 원장님께 인사드리고 오고 싶다고 했다.
며칠 전 마지막 수업 때도 인사를 했을 텐데, 또 찾아가는 건 괜한 폐가 될까 싶었다. 선생님도 수업 중이실 텐데 괜히 불청객이 되는 건 아닐까 싶어 말렸다. 하지만 아이는 막무가내로 졸랐고, 결국 “그럼, 얼른 인사만 드리고 와!” 하며 보내주었다.
그리고 어제, 금요일이었다. 아들이 또 영어학원 앞에 내려달라고 했다.
“왜?”
“주말에 이사 가면 오늘이 진짜 마지막이니까, 인사드리러 가야지.”
“아니, 며칠 전에 다녀왔잖아?”
“아니야, 한 번만 가면 정 없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그렇게 아이는 또 한 번 인사를 다녀왔다.
“나도 피아노 학원 선생님 보고 싶은데...”
둘째도 지난주에 그만둔 피아노 학원 선생님을 뵙고 싶다며 학원에 데려다 달라고 했다. 솔직히 귀찮기도 했지만, 아이들의 정 많은 모습이 기특해서 데려다주었다. 이 아이는 미술학원을 그만두던 날에도 선생님 허리춤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던 아이였다.
저녁이 되자 선생님들께 문자가 도착했다.
“몇 번씩이나 찾아와 인사하고 가니 너무 감동이에요. 참 정 많고 따뜻한 00이. 이사 가서도 잘 지내길 바라요.”
문득 나도 어릴 적 생각이 났다. 나 역시 이별 앞에서 쩔쩔매며 눈물을 뚝뚝 흘리던 시절이 있었다. 졸업식을 앞두고 선생님께 편지를 써서 전해드릴 때면, 헤어짐이 못내 아쉬워 울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숱한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다 보니, 점점 무뎌진 듯하다.
어릴 적에는 누굴 만나든, 그 관계가 영원할 것만 같아 마음을 다해 애정을 쏟았다. 그래서 더 이별이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지금은 애초에 그렇게 온 마음을 다해 시작하는 관계조차 어렵다. 나이 들면 다 그렇지, 하며 스스로 위안을 삼는다.
잠자리에 누워 있는데 아들이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엄마, 나 눈물 나...”
“왜?”
“이 집에서 추억이 많아서...”
그리고는 이 집에서의 추억들을 하나하나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말없이 들어주었다.
“추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고, 이렇게 마음속에 기억 속에 다 남아 있는 거야. 이제 새로운 곳에서 또 새로운 추억을 만들면 돼. 그렇지?”
아들은 고개를 몇 번 끄덕이더니 그대로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들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이 아이들도 자라면서 이별에 조금씩 무뎌지겠지. 상처는 조금 덜 받으면 좋겠는데..'
아이들이 늘 추억을 소중히 여기고, 지난 인연을 떠올리며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라며 나도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