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를 처음 만난 건 2003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날이었다.
이제 막 새내기를 벗어나 나도 드디어 후배가 생긴다는 사실에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Y는 생글생글 잘 웃는 얼굴이었고 털털한 성격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신입생들 사이에서도 이미 인기가 많다고 했다.
Y와 특별히 가까워지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과방에서, 강의실 앞에서 가끔 마주쳐 몇 마디를 나누다 보면 이상하게 말이 잘 통했다. 쿵짝이 맞는다는 말이 딱 그랬다. 후배였지만 나이 차이를 의식할 틈도 없이, 어느새 친구만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졸업을 앞두고 우리는 둘 다 국어교사가 되고싶다는 같은 꿈을 품었다. 나는 곧바로 임용고시 공부에 뛰어들었고, Y는 기간제 교사로 먼저 학교 현장에 나갔다. 그때의 Y는 이미 '선생님' 된 것처럼 보였고 그 모습이 부러웠다.
기간제 교사 1년 계약이 끝나면 당연히 임용 준비를 시작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Y는 내 예상을 가볍게 비켜갔다. 그동안 모은 돈을 들고 훌쩍 세계여행을 떠나겠다고 했다.
"어차피 공부 시작하고 시험 붙으면 못 가잖아.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요."
1년째 임용시험에 떨어지고, 2년 차 고시생이 되어가던 나는 또다시 Y가 부러웠다. 과감한 선택도, 다녀와서 다시 시작해도 된다는 자신감도. 한 학년 후배였지만 인생에서는 오히려 선배처럼 느껴졌다.
Y가 1년간의 세계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두 번째 시험에 또 낙방한 상태였다. Y는 다시 기간제 교사로 일하다가, 그 경력을 살려 사립학교 정교사 시험에 합격했다. 내가 세 번째 임용시험에 떨어졌을 즈음이었다.
이상하게도 질투가 생기지는 않았다. 자격지심 때문에 Y를 피하지도 않았다. 여전히 Y와 나누는 대화는 즐거웠고, 말이 잘 통했다. 가끔은 'Y는 참 일이 쉽게 풀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곧 이유를 알 것 같았다. Y는 늘 긍정적이었고, 사람을 편안하게 만드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도 그렇게 되고싶다 생각했다. Y는 내게 좋은 기운을 나눠주는 동생이자 다정한 친구였다.
내가 힘든 마음을 털어놓을 때도 Y는 '언니는 꼭 합격할거'라며 조언과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마침내 나도 임용시험에 합격했고, Y는 누구보다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나는 강원도에 Y는 대구에서 근무를 했지만 우린 방학이면 시간을 내 얼굴을 보곤 했다.
그 후 Y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남자친구와 결혼을 했고 동시에 주말부부가 되었다. 몇년이 지나도록 아이 소식이 없자, 오랜 고민 끝에 Y는 학교를 그만두고 남편 곁으로 올라왔다. 그때의 Y는 많이 힘들어 보였다.
내가 연달아 시험에 떨어져 흔들릴 때 Y가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었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Y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었다. Y는 서울에서 다시 임용시험을 준비했고, 몇 번의 낙방 끝에 결국 합격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일년에 한 두번, 방학을 이용해 만나면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사는 곳도, 살아온 방식도 달랐지만, 이상하게도 Y와의 대화는 늘 즐겁고 여전히 말도 잘 통했다.
오늘, Y를 만나 모처럼 즐거운 대화를 나누던 중에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남편의 주재원 발령으로 미국에 가게 되어 동반휴직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적어도 3년, 어쩌면 그 이상.
일단 "좋겠다! 잘됐다!" 라고 말하면서도 '이제 몇년간은 못보겠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 한켠이 서운해졌다.
"언니가 미국 한 번 갈게!" 라고 농담처럼 말했지만 진짜 그럴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처음 만난 2003년부터 우리는 늘 이렇게, 같은 자리에서 함께 걷지는 않았지만 서로의 인생을 멀리서 응원하며 지나온 사이였는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조금 멀리 떨어져있지만 지금까지 나눈 온기를 모아 더 큰 마음으로 응원해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