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가 뱃속에 있을 때, 신장 기형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들었다.
그때부터 낳기 전까지, 그리고 낳은 뒤에도 참 많이 울었다.
'엄마가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이 말이 마음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우리는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서 줄곧 추적 관찰을 이어왔다. 아이는 요로감염으로 두 번이나 입원했고, 그때마다 큰 병으로 이어질까 마음을 졸였다.
다행히 기능에는 이상이 없다는 소견과 함께
"사춘기 이후에 다시 봅시다."라는 말을 들은 게 2년 전이다.
그날 병원을 나오며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정말로 한 고비를 넘긴 것 같았다.
그런데 최근 아이가 화장실을 자주 들락거리는 모습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게다가 소변검사에서 혈뇨가 나오기도 했다. 곧바로 진료를 예약했다.
아침 8시 30분 검사를 위해 새벽부터 서둘렀다. 잠든 아이에게 옷만 입혀 보쌈하듯 안아 차에 태웠다. 6시에 출발했지만 서울로 향하는 길이 많이 막혀 가까스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검사를 기다리는 동안, 걱정은 줄어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주문처럼 말을 걸었다.
'다른 장기는 하나지만 신장은 두 개니 얼마나 다행이야?
정 안 되면 내 걸 떼어줄 수도 있지 뭐.' 라며 긍정 회로를 억지로라도 돌려보았다.
그리고 천만다행으로, 검사 결과 특별한 이상은 없다고 했다. 아이가 평소 물을 잘 마시지 않는데, 약간의 탈수 증세 때문에 최근 소변을 자주 봤을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바로 집으로 돌아갈까 하다가, 방학하면 키자니아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던 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 방향을 틀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었다. 단체가 많아 체험 하나당 대기 시간이 기본 한 시간. 안내원은 많아야 두 개 체험하고 끝날 거라고 했다.
"다음에 다시 올까?"
물었지만, 아이의 마음은 이미 키자니아 안에 들어가 있었다.
결국 들어갔고, 말 그대로 기다리는데 시간을 거의 보내고
두 가지 체험을 겨우 하고 돌아왔다.
집에 오니 첫째가 하루 종일 혼자 밥도 챙겨 먹고, 학원도 다녀오고, 숙제도 끝냈다고 했다.
"엄마 힘들까 봐 설거지도 해놨어."
그 말에 괜히 목이 메었다.
집에 오자마자 저녁을 준비하고, 청소를 하고 나니
내 입에 밥을 넣을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마침 남편이 고생했다며 회를 시켜주었다.
회 몇 점에 맥주 한 잔. 그것으로 하루를 마무리했다.
9시도 되기 전에 지친 몸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그냥 자려다가 기록으로 남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