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근무를 하면 대부분의 시간을 교실에서 학생들과 보내기 때문에 동료 교사와 교류하는 일이 거의 없다. 업무와 관련하여 소통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사적인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많지 않다. 가끔 쉬는 시간이 맞으면 옆자리 동료 선생님과 가벼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부이다. 그래도 결혼 전에는 퇴근 후에 동료들과 식사를 하거나 커피 한 잔을 하러 가기도 했는데 아이를 낳고 워킹맘이 되고부터는 그마저도 하기 힘들어졌다.
내가 첫아이를 낳고 두 번째로 근무하게 된 직장에서는 동료들과의 소통을 활성화하고 교원의 사기진작을 위해서 교사 공동체 활동을 적극 장려했다. 이것을 계기로 처음으로 독서모임을 만들었다.
나와, 도서관 실무담당자 선생님, 그리고 내 또래의 몇몇 여자 선생님들이 독서모임에 들어왔다. 나이대도 비슷해서 재미있고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박 선생, 독서모임에 나도 들어갈 수 있을까요?”
교장선생님의 전화였다.
솔직히 매우 당황스러웠고 부담스러웠으나 안된다고 하기 어려웠다.
“그럼요! 당연히 되지요. 함께해요. 교장선생님^^”
“그런데 다른 선생님들이 불편해하거나 싫어하진 않을까요?”
“아.. 그렇지 않을 거예요^^"
불편한 감정을 티 내지 않으려 애써 밝게 대답했다. 결국 교장선생님과 동료 선생님들이 함께 하는 독서모임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고 만나서 대화를 나누기로 했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책을 선정하기로 했다. 첫 번째 도서는 교장선생님께서 골라주셨다.
책 제목은 <빅 히스토리>이고 우주적인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의 역사를 조망하는 과학 관련 서적이었다.
그때 처음 교장선생님의 전공이 ‘과학’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 제목을 듣고 표정관리가 조금 힘들었다. 책을 좋아하긴 하지만 문학이나 인문 분야의 책을 주로 읽기 왔기에 과학 분야의 책은 매우 생소했다. 솔직히 말하면 흥미가 없어서 읽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두께도 상당했다. 책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둘째치고 완독하는 것도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독서모임의 첫 번째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은 태양계의 탄생, 지구의 탄생, 인류의 탄생 등 오늘에 이르기까지 굵직한 역사적 순간들을 다루고 있었다. 처음에는 억지로 꾸역꾸역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흥미로운 부분이 많았다. 게다가 생각보다 많이 어렵지 않았다. 강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해서 쉽게 읽혔고 다양한 예시와 사진들은 흥미를 더했다.
독서모임을 하는 날 다들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에 어렵고 재미없을 거란 생각과는 달리 읽을만했고 흥미로웠다고 했다. 본격적인 책 대화가 시작되고, 중간에 이해가 잘 안되거나 궁금증이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교장선생님께서 알기 쉽게 설명해 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독서모임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두 번째 책은 백영옥 작가의 <빨강 머리 앤이 하는 말>이었는데 이번에는 교장선생님 표정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런 소녀스러운 책은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하셨다.
"저희도 교장선생님 아니었으면 <빅 히스토리>란 책은 평생 안 읽어봤을 거예요"라는 누군가의 솔직한 발언에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크게 웃었다.
교장선생님도 웃으시며 흔쾌히 읽겠다고 하셨다. 그 후로도 우리는 한 달에 한 번씩 다양한 책을 읽고 만났다.
이 독서모임은 내가 둘째를 임신하고 휴직을 하여 학교를 떠날 때까지 계속하였다. 크리스마스 날은 독서 파티를 열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나는 지금도 여러 개의 독서모임을 하고 있다. 독서 모임을 하다 보면 내가 평생 모르고 지나쳤을 책, 전혀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한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사람들의 취향을 알게 되고 서로를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 새로운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되기도 한다.
서로 생각과 관심사가 달라 대화가 잘 통할까 싶었지만 '책'이 대화의 중심을 잘 잡아주었다.
또한 다양한 책을 읽으며 나의 독서 스펙트럼이 넓어지기도 하고 나에게 맞는 책이 무엇인지 더 잘 알게 되기로 한다.
이제는 내 취향이 아닌 새로운 책을 만나면 ‘오! 어떤 내용일까?’ 하는 궁금증과 흥미가 먼저 생긴다. 다양한 책을 읽고 싶다면 독서모임을 적극 추천한다. 일단 모임을 하게 되면 강제성도 생기니 책을 읽고 싶은데 의지가 부족한 사람에게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