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로하는 시 읽기

by 슈퍼엄마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골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 가슴은 너무도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 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하는 듯이 나를 울력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하눌이 이 세상을 내일 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 높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 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쓰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하듯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는 백석의 <흰 바람벽이 있어>이다.

이 시는 고향을 떠난 인물이 부정적인 현실을 마주하면서 그걸 이겨내려는 의지를 표현한 시이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집을 떠나 생활했다.

친척집, 학교 기숙사, 자취방, 고시원까지 해마다 짐을 싸들고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내 몸 편히 누울 집 한 칸 없다는 게 참 서럽고 외로웠던 기억이 난다.


돌아보면 고시원에서 생활했던 시절이 참 힘들었다. 고시원 방 중에 창문이 있는 방을 얻기 위해서는 한 달에 3만 원을 더 내야 했는데 그 돈마저 사치라고 여기던 시절이었다. 창이 없는 방에서 아침에 일어나 잠들기 전까지 책을 붙들고 공부하면서 아주 긴 터널을 통과하는 듯한 막막함을 자주 느끼곤 했다. 다 놓아버리고 싶은 그 순간에도 꾸역꾸역 다시 책을 펼쳐 들고 공부를 했지만 머리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그런 날은 시집 한 권을 꺼내 들어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편의 시를 읽고 나면 마음에 큰 위로를 받곤 하였다. 그때 자주 읽었던 시가 백석 시인의 시였다.


연달아 시험에도 떨어지고 생활고까지 겹쳐 더 이상 공부를 계속하기 힘들었을 때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루 종일 나 혼자 창살 없는 감옥 같은 곳에서 공부를 하지 않아도 되니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출근을 하기 위해 화장을 하고 어떤 옷을 입을까 고르는 순간마저도 마치 데이트 나가는 것처럼 설레었다.


그때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은 고등학생이 되어 학교생활 적응과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로 힘들어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 모습이 나를 보는 것 같아서 안쓰럽고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내가 마음이 힘들 때 시를 통해 위로받았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아침 조회시간에 시를 한편씩 읽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를 학급 게시판에 붙여두고 나왔다.


그깟 시를 읽어주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으면서도 그중 누군가에 마음에 가닿기를 바라면서 정성스레 시를 고르고 아침마다 읽어줬다. 그날은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를 읽어줬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시를 읽고 나서 고개를 들어 학생들의 얼굴을 바라보았는데 몇몇 학생들의 눈시울이 붉어진 게 보였다. 그날 수업을 마치고 자리로 돌아오니 책상 위에 쪽지가 올려져 있었다.


‘고등학교에 올라와 학교생활 적응하느라 요즘 많이 힘들었어요. 늦은 시간까지 야자 하는 것도 너무 피곤하고, 친구 사귀는 것도 어렵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싶은데 그것도 내 맘 같지 않네요.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힘들었어요. 저도 흔들리는 중인 거겠죠? 오늘 읽어주신 시 정말 감사합니다.’


쪽지를 읽다가 왈칵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그 순간 알았다. 아이들을 위로한답시고 아침마다 시를 읽어주면서 사실은 내가 위로받고 있었다는 것을.


몇 년째 시험이 떨어지고 자존감도 바닥이었다. 뭐 하나 내 맘대로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아이들에게 "괜찮아. 할 수 있어!"라고 하는 말이 사실은 나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듣고 싶은 말, 누군가 내게 해줬으면 하는 말들을 아이들에게 해주면서 그렇게 위로받았던 것이다.


그 후로도 마음이 힘든 날, 긴 글을 읽어나갈 힘조차 없을 땐 어김없이 시집을 꺼내 든다. 내 마음을 위로하는 시를 몇 편 읽고 나면 마음의 불안과 걱정도 조금은 씻겨나가는 듯한 기분을 느낀다.


내가 시를 읽으며 위로를 받듯이 누군가를 위로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땐 위로의 말 대신 시를 한 편 적은 편지를 건네거나 시집을 선물하곤 한다. 때론 긴 말보다는 한 편의 시가 더욱 효과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