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분양받은 새 아파트에 입주를 하게 되었다. 낯선 동네에 적응하기 위해 입주자 카페에 자주 드나들었다. 이 동네 맛집은 어디인지, 아이들과 갈만한 곳은 어디인지 열심히 정보를 수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독서모임은 없나요?'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데 동네 친구도 사귈 겸 함께 독서모임을 하고 싶다며 독서모임 정보를 구하는 글이었다. 그 아래에는 '그러게요. 있었으면 좋겠네요' '아직 없는 것 같아요.' 등의 댓글이 달려있었다.
그때 둘째 출산 후 육아 휴직 중이었는데 가끔 학교에서 동료 선생님들과 하던 독서모임이 그립던 차였다. 원하는 것이 있으면 기다리기보다 찾아 나서는 편이라 이번에도 독서모임을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파트 내에 도서관에 있었고 그 옆에 회의실도 있었기에 장소도 걱정이 없었다.
'독서모임 만들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독서모임을 함께 하자는 모집글을 올렸다.
인원은 10명 이내로 소모임이었으면 좋겠고, 한 달에 한 번 책을 읽고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그렇게 총 6명이 모였다.
다들 아이를 키우고 있어서 평일 늦은 저녁시간에 모이기로 했다.
책은 한 사람이 4~5권 정도 추천하면 그중에 투표로 정해졌다. 돌아가며 책을 추천했기에 각자의 취향과 관심사를 알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다양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첫 번째 책은 내가 추천하기로 했다. 국내외 좋아하는 작가들의 소설을 4권 정도 추려 후보에 올렸다. 거의 만장일치로 알랭드 보통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이 뽑혔다.
"알랭드보통이 누구인지를 모르지만 제목을 보니 할 말이 아주 많을 것 같은데요?"라는 누군가의 의미심장한 말에 다들 공감한다는 듯이 깔깔대며 웃었다.
역시나 첫 모임부터 치열한 대화가 오고 갔다. 책을 읽을 때는 자신의 생각과 경험에 비추어 읽게 되므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생각 등 많은 부분이 대화에 담겨있다. 엄마들은 각자의 '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에 대해 이야기했고 순식간에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첫 만남이지만 서로에 대해 많이 알 수 있었고 우리는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이 모임에서는 주로 소설과 에세이, 인문 분야 책을 많이 읽었다. 문학작품은 결국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작품 속의 인물은 내가 되기도 하고 내 주위의 누군가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책을 읽으며 내 주변 사람을 이해해보기도 하고,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살펴보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독서모임은 온종일 '오늘 반찬은 뭐를 해먹이나', '애들 학원은 어디를 보내나'만 생각하던 엄마들에게 오직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만들어 주었다.
엄마들은 그 시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남편과 아이들 저녁을 차려주고 나면 나를 위한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독서모임이 있는 날은 하루 종일 설렌다고 했다.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가는 주부들에게 밤공기는 유난히 달콤하다.
한 달에 한 번 독서모임을 하지만 그 사이에 집으로 초대해서 점심 식사를 같이 하기도 했다. 서로 유용한 정보를 교류하기도 하고 수다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기도 했다.
덕분에 낯선 동네에 쉽게 적응할 수 있었고 휴직 기간 동안에도 새로운 인연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중간에 코로나로 인해 모이지 못하게 되자, 온라인으로도 모임을 이어갔다. 처음엔 줌 사용방법이 익숙지 않아 카톡으로도 감상을 나누기도 했다. 어떤 날은 각자 감상문을 써서 공유하기도 하고, 구글 스프레시트에 책을 읽고 이야기 나누고 싶은 질문을 올리면 질문 아래 답을 달기도 했다.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독서모임을 이어갔다. 누구도 모임의 끈을 놓고 싶어 하지 않았다.
3년이 지나자 이사를 가는 분도 생기고, 주말부부를 하게 되어 저녁에 시간을 빼지 못하는 분도 생겨났다. 그래서 나를 포함해서 3명이 남게 되었다.
최근 오랜만에 오프라인으로 독서모임을 했다. 모임 중에 요즘 코로나가 많이 잠잠해진 듯하니 새 회원들 모집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얼마 전엔 새 회원을 모집한다는 글을 올렸다. 우린 다시 7명이 되었다.
며칠 전 신입회원과 함께 하는 첫 번째 독서모임을 했다. 새 회원이 들어오자 모임은 다시 활기를 찾은 듯했다.
함께 읽은 책은 최은영 작가의 <애쓰지 않아도>였다. 독서모임을 하는 동안 별말이 없던 듣고만 있던 신입회원분이 입을 열었다.
"책을 읽으면서 별로 재미있다고 생각 못 했어요.. 딱히 공감 가거나 와닿는 것도 못 찾겠더라고요. 그런데 오늘 와서 여러분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너무 재미있네요. 책을 다시 읽어보고 싶어 졌어요. "
독서모임의 묘미 중 하나다. 책을 읽을 때는 그냥 지나쳤던 부분들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재미없게 읽은 책도 생각지 못한 부분을 발견하게 되어 재미를 느끼게 된다. 전에 <복자에게>라는 소설을 읽었을 때는 평점이 별 1개부터 별 5개까지 나와서 놀란 적이 있었다. 같은 책을 읽도고 서로의 생각과 감상이 달라지니 혼자 읽을 때보다 더욱 풍부한 감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마음도 넓어지는 듯하다.
우리는 두 번째 만남을 준비하며 책을 읽고 있다. 다음에는 또 어떤 즐거운 이야기들이 오고 갈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