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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Jan 09. 2023

말 잘하는 사람보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말을 좀 잘합니다만...


어릴 적부터 말을 야무지게 잘한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초등학교 때 처음으로 나간 대회도 동화구연 대회였다. 도 대회에서 1위를 하면 전국대회에 나갈 수 있었는데 기대 없이 나간 대회에서 1위를 했다. 그리고 전국대회에서 3위를 했다. 그 후로도 매년 도 대회에서 1위를 하고 전국대회에서 2위까지 차지하였다.

그때 나는 작은 유명세를 탔다.

학교 선생님은 물론 교장선생님까지 나를 보러 직접 반에 내려오셨다.

"아주 똘똘해 보이는구나. 네가 그렇게 말을 야무지게 잘한다며?"


고학년에 되어서도 '나의 주장 발표대회' 등의 말하기 대회에 출전하여 나가기만 하면 상을 받아왔다. 말하기에 재능이 있다고 여겼다. 학교에서 조별 과제를 하고 발표를 해야 할 일이 있을 땐 친구들 모두 내가 발표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발표 후엔 늘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나의 말하기 실력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뿐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 더 두각을 드러냈다. 어느 모임에서든 재치 있는 입담과 화려한 말빨로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만들곤 했다. 약간의 성대모사를 곁들이면 사람들이 아주 빵빵 터졌다.

그럴 때마다 마치 내가 그 자리의 주인공이 된 듯했고, 그 자리 모인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를 들으러 온 사람들 같았다. 그렇게 말하기는 나의 자랑이자 무기라고 생각했다.


나의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다니..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친구들과 롤링페이퍼를 쓰는 시간을 가졌다.

빈 종이에 내 이름 석자만 써두면 친구들이 와서 하고 싶은 말들을 써주고 그 종이가 친구들 사이를 돌고 돌아 다시 내게로 오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졸업하고도 연락하고 지내자!', '네 덕분에 즐거웠어. 넌 정말 좋은 친구야~' 등의 다소 뻔하지만 기분 좋은 칭찬들과 덕담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그런 칭찬과 덕담들 사이로 눈에 띄는 글이 보였다.

'네 말에 상처받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아둬. '

쿵.

뭐지?? 누군지도 밝히지 않고 들키지 않기 위해 글씨체도 적당히 위조해서 쓴 글이었다.

누군가가 이 말은 반드시 해야겠다는 각오를 하고 쓴 것 같았다.

누구지? 나는 레이더망을 펼쳐 반 친구들 하나하나를 의심해 보았다.

나에 말에 상처받은 사람일까? 아님 내 말이 누군가를 상처 주는 것을 본 사람일까?

사실 그리 소심한 성격도 아니고 누가 안 좋은 말을 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기는 쪽에 가까운데 그 말만은 쉽게 잊히지가 않았다. 그전까지 말을 잘하는 것이 나의 자랑이자 무기라고 생각해서 더욱 그랬을지도 모른다.

빛나는 검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나를 지키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을 헤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말 보다 글


그 후로는 자꾸 말을 할 때 신경을 쓰게 되었다.

특히 화가 나는 일이 있거나 불편한 마음을 전달할 때에는 어김없이 그 말이 떠올라 멈칫하게 되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말하기가 두려워졌다. 어느 모임에 가서도 너무 내 이야기만 하는 건 아닌지, 내 말이 상처가 되면 어쩌지 자꾸 염려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오늘 내가 했던 말들을 다시 곱씹어 보기도 했고 그런 일들이 쌓여가며 점점 피곤해지고 말하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그런 날은 집에 돌아와서 글을 썼다.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말도 글로 쓰고, 오늘 느꼈던 불편했던 감정도 글로 쓰고..

그때부터는 글 쓰는 일이 점점 편해졌던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땐 말 대신 글로 전달하는 일도 많아졌다.

생각해보면 말로 인해 오해가 생긴 적도 많았다. 내 맘은 그게 아닌데... 설명하려고 들수록 상대를 더 화나게 하는 경우도 많았다.

말속에 담긴 진심을 보지 못하고 말투를 지적하거나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글을 달랐다.  

말은 솔직하게 하면 자칫 배려 없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지만 글을 솔직할수록 상대에게 더 잘 전달되었다. 그리고 말로는 설명이 잘 안 되는 감정들도 글을 쓰면서 찬찬히 풀어내고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렇게 글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나는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쩌다 보니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상대가 청소년인 만큼 말하는 것에 더 신중하려고 노력한다. 사람들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걸 못 견디는 성격이라 먼저 말을 잘 걸어 침묵을 깨는 편인데 기다리거나 들어주려고 노력도 하고 있다. 할 말을 반으로 줄이고 말로 다 못한 이야기들은 글로 정리하면서 풀려고 한다.


요즘은 글 쓰는 일도 쉽지 않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처음엔 그저 쓰는 것 자체를 즐겼는데 잘 쓰고 싶은 욕심이 더해지면서 글 쓰는 일이 어려워진 것 같다. 글을 쓸 때는 말하듯이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쓰고, 말을 할 때는 글을 쓸 때처럼 생각하고 정리해서 말하게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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