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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Jan 11. 2023

소년을 읽다(서현숙)

소년들과의 수업 일지 그리고 성장 일지

한창 열정이 넘치는 시기라고 하는 교직 생활 4년 차, 1정 연수에서 서현숙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어떤 교사가 되고 싶은지, 교사로서의 방향성을 찾고자 고민할 때 서현숙 선생님의 연수를 들으며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는 국어교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로 인해 아이들이 책과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책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과 용기와 희망을 얻는다면 국어교사로서의 나의 역할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 독서교육과 관련된 연수를 찾아다니며 열심히 하고자 했고 내가 가는 곳마다 서현숙 선생님이 계셨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작년에 서현숙 선생님을 오랜만에 만나 근황을 여쭈었더니 2019년 소년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그곳 아이들과 국어 수업을 했다고 하셨다.

"소년원에서 국어 수업을요??" 그 순간 놀라움과 함께 궁금증이 몰려왔다

'어떻게 소년원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어요?'

'소년원 학생들과는 어떤 책을 읽었나요?'

'아이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았는데 그 이야기를 책으로 쓰셨다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책을 기다렸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책을 만나게 되었다.


에필로그만 읽는데도 마음이 들뜨고 콧등이 시큰거렸다.


어느 부분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기도 했다.  선생님의 말씀대로 이 책은 소년들과의 수업 일지인 동시에 성장의 기록이다. 그 성장을 지켜보는 이는 눈물겹다.


소년원에서의 수업이 궁금한 이유는 그곳에 대한 편견이 한몫했다. 교실에서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 한 둘만 있어도 내 시간과 기분은 엉망이 돼버리곤 했다.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어도 나도 사람인지라  마음이 삐뚤어질 때가 있다. 일반 교실에서의 수업도 이러한데 그곳은 상대하기 힘든 아이들이 모여있지 않을까? 과연 수업이 될까? 하는 편견이었다. 하지만 내가 잊은 것이 있다. 소년원의 소년들도 범죄자이기 전에 애들이었다. 젤리가 먹고 싶고, 아이돌 스티커를 붙여주기를 바라고 예쁜 책표지에 마음이 가는 소년이었다.


선생님은 이곳 아이들과 책을 읽고 그 책의 작가와 만나는 시간을 마련했다. 소년원에 오시는 작가님을 맞이하기 위해 아이들은 편지도 쓰고 퀴즈도 준비하고 역할놀이를 한다. 그렇게 그곳에서 소년들은 '환대'를 배운다.


어디에서도 환대받지 못하고 늘 주변인으로 머문 시간이 많았을 소년들이 환대로 사람을 맞이하는 경험,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활동하는 경험을 한다. 이러한 경험이 쌓여서 적어도 남을 소외시키지 않는 사람, 자신의 삶을 돌보며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선생님의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다정했다.


"사람이 바닥까지 추락하게 되면.."
"이 구절이 왜 인상 깊어?"
"지금이 저에게 그런 시간이에요. 바닥까지 추락한 시간"
사람은 자신의 처지와 관점에서 책을 읽는다. 연인과 헤어진 사람은 이별 이야기에 유난히 목이 멘다. 이별을 다룬 세상의 모든 노래 가사는 내 마음을 알고 쓴 것 같다. 갇힌 사람에게는 자유의 이야기가 절절하다.
소년원에 갇힌 아이는 지금이 자기 인생에서 최악의 시간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래서 유독 그런 표현이 마음에 들어와 얼음송곳처럼 콕 박힌다.


나는 학생들과 책 읽을 읽고 난 뒤에 가장 인상 깊은 문장이나 마음에 드는 문장을 찾아보도록 한다. 대번 자기의 생각을 묻거나 느낌을 묻는 말에는 아이들이 대답하기 어려워하지만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책을 읽고 인상 깊은 구절을 서로에게 말하는 것은 '마음을 들키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사람은 자기의 처지와 관점에서 책을 읽기 때문에 아무리 아닌 척해도 그 구절에 오래 마음이 머무는 까닭이다.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은 선생님 앞에서 마음의 빗장을 풀게 된다. 밑바닥에 숨겨진 맨얼굴을 들키게 된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제목처럼 소년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마음을 읽고 그러면서 희망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데서 살았다는 흔적, 어디에도 남기고 싶지 않아요.
소년이 남기고 싶어 하지 않는 시간에 나도 포함되어 있는 까닭이다. 나는 누군가의 어두운 시간, 달아나고 싶은 시간, 숨기고 싶은 시간에 함께 있는 사람이다.


처음 교직 생활을 시작했을 때 아이들과의 이별을 못 견디게 힘들어했다. 영원할 것처럼 다 퍼주고 나니 못 견디게 마음이 헛헛한 것이었다. 이별에 내성이 생겨서인지 해가 거듭될수록 나의 애정이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헤어질 때 아쉬울 정도로만 '적당히' 사랑하는 요령? 을 터득한 것 같다. 아이들의 기억 속에도 적당히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바라면서.


그런데 지금의 시절을 잊고 싶어 하는 아이들, 아이들의 잊고 싶은 기억 속에 자리 잡은 교사는 어떤 마음으로 아이를 대해야 하나? 그런 상황 속에서 온전히 내 마음과 정성을 쏟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아프고 헛헛해서 눈물이 날 것 같았는데 그 시간을 견디신 선생님의 마음을 감히 헤아리기가 어렵다.


 민우는 생애 17년 만에 첫 번째인 일이 두 가지 생겼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재미있는 책을 만났고,
자신만을 위해 책을 읽어준 최초의 어른이 생겼다.
이 사실이, 나는 눈물겹다.


앞에서 시를 외우고, 나를 위로하는 이 기특한 아이가 극악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하는 그 간극은 메우기 힘들었을 듯하다. 그렇다고 소년들의 죄를 변명하거나 미화하지는 않는다. 단지


" 나의 마음을 순하게 만드는 사람, 사납고 날 선 마음의 결을 조용히 빗질해서 얌전하게 만드는 사람, 싸울 듯 살다가도 팔다리 긴장 풀고 몸도 마음도 평평하게 눕게 만드는 그럼 사람"이 이 소년들의 곁에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신다. 이 소년을 머리맡에 누이고 다정한 목소리로 책을 읽어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17년 만이지만 선생님이 그런 사람이 되어주셔서 내가 다 기쁘다. 내친김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심까지 부려본다.


곧 있으면 3월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새 학기가 기다려졌다.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될까? 올해 만나는 그 아이들을 환대하고 싶어졌다. 소녀, 소년들과 어떤 책을 읽을까 설레고 기다려졌다.


올해는 나도 그저 아이들과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을 읽어주고 싶다. 그들이 내 앞에서만은 마음의 빗장을 풀고 힘을 빼고 좀 더 말랑말랑해질 수 있도록 좀 더 다정하게 다가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사이에는 책이 함께해 줄 것이다. 오랜만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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