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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Jun 04. 2023

눈부신 안부(백수린)- 이렇게 아름다운 소설이라니..

소설을 깊이 있게 읽고 싶은 생각에 문학동네 북클럽을 가입하고 북클럽에서 매달 지정한 '이달책'을 구매하여 읽고 있다. (4월  손보미 작가의 <사랑의 인사>, 5월은 김수빈 작가의 <고요한 우연>이었다. )

6월은 백수린 작가의 <눈부신 안부>인데, 사실 6월 이달책을 건너뛸까 생각을 했다. 우선 백수린 작가의 작품을 읽어 본 적이 없고, 다른 읽어야 할 책들이 쌓여있기도 하고.. 어쩐지 마음 내키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책 소개 글을 보다가 이 한 문장에 마음을 뺏겨 주문을 했다.


언니. 사람의 마음엔 대체 무슨 힘이 있어서 결국엔 자꾸자꾸 나아지는 쪽으로 뻗어가?

정말, 이 한 문장에 꽂혀서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책을 읽다가 드디어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는 눈물이 났다.  이 대사가 나오게 된 서사와 문맥을 알고 나니 마음이 더욱  뭉클했다.


작품의 줄거리

책 소개 글에서는 <눈부신 안부>의 줄거리를 한 줄로 요약하면 유년의 상처를 대면하지 못한 채 어른이 된 한 여성이 뒤늦었지만 차근차근 진정한 치유와 성장을 이뤄나가는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작품의 주인공 해미는 일찍이 뜻밖의 사고로 친언니를 잃고, 아빠와 별거하기로 한 엄마를 따라 그 슬픔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독일 G 시로 가서 살게 된다. 그곳에서 만난 파독 간호사 출신 이모들과 그 이모들의 자녀인 '레나'와 '한수'를 만나면서 해미의 일상은 다시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듯한다. 가끔은 행복하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그러나 그곳에서 다시 한번 큰 상실감을 느끼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다.


어른이 된 해미는 어린 시절의 일을 잊고 무감하게 살아가지만 치유되지 않은 상처는 해미를 다른 사람과 일정 거리 거리를 두게 만들었다. 그 거리 안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대학시절 친구 우재를 통해 해미는 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날의 자신과 마주할 용기를 낸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을 읽을 때 역사 속 '사진 신부'의 삶에 대해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면 이 작품에선 '파독 간호사'의 삶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다. 파독 간호사에 대해 내가 아는 거라곤 영화 <국제 시장>에서 본 한국전쟁 이후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의 이야기가 전부이다. 그러나 작품 속에서는 그들을 가난, 희생, 애국 등에 가둬놓기보다는 좀 더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여성으로 그려냈다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김종욱 찾기'에 버금가는  '한수'의 엄마 '선자 이모'의 첫사랑 찾기는 해미가 자신의 지난 상처를 마주하기 위한 작품 속 주요 사건으로 등장하는데 마지막 첫사랑의 실체는 조금 의외였고 놀라기도 했다.


이렇게 다정한 소설이라니..

이 작품에는 다정한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사고로 언니를 잃고 아빠와 헤어져 독일에 온 해미에게 "하지만 기억하렴. 그러다 힘들면 꼭 이모한테 말해야 한다. 혼자 짊어지려고 하면 안 돼. 아무리 네가 의젓하고 씩씩한 아이라도 세상에 혼자 감당해야 하는 슬픔 같은 건 없으니까. 알았지?"라고 말해주는 이모,


"아시죠? 해미는 가까워지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일정 거리 안으로는 들이지 않는 거"라고 말하면서도  그 안에 들어서고 싶어 노력하는 우재,


그리고 해미 곁을 지켜주는 레나와 한수까지.. 외로웠던 해미의 삶을 지켜주는 든든한 사람들.


이렇게 아름다운 소설이라니..

 나는 소설을 읽을 때 내용도 중요하지만 문장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 작품에는 아름다운 문장들이 유독 많았다.


'어디론가 멀어지는 벚꽃잎들을 보고 있노라면 완전히 잊어버린 줄 알았던 기억들이 봄밤의 꽃향기처럼 밀려왔다.'


'설익은 열정과 어디로 흘러가면 좋을지 모를 욕망들이 이른 봄의 꽃망울처럼 앞다투어 피어나던 시절을 우리가 통과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레나를 좋아하는 일이 아침 햇살 아래 부드럽게 몸을 드러내는 연둣빛 들판처럼 완만한 것이었다면, 한수를 좋아하는 건 이유도 없이 찾아오는 슬픔과 벅차도록 밀려오는 기쁨의 계곡 사이를 곡예하듯 걷는 현기증 나는 일이었다.'


'우재의 말이 잎을 모두 잃은 겨울나무 같은 내 마음을 미풍처럼 흔들고 지나갔다.'


아 .. 이런 문장들은 대체 어떻게 쓰는 거지? 이런 문장들이 작품의 서사와 어우러지면서 마음을 툭툭 건드리고 지나간다.


이렇게 뭉클한 소설이라니..

소설을 읽고 나면 안부를 묻고 싶은 사람들이 떠오른다. 지금은 생사조차 모르지만 나의 10대 그리고 20대 힘든 시절, 곁에서 누구보다 힘이 돼줬던 사람들, 지금은 어떤 이유에서 멀어졌는지 생각조차 나지 않는 사람들이 그리워졌다.


나라는 사람이 부족하고 서툴러서 누군가에게 준 상처들을 내가 만난 다정한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 구원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또 마음이 뭉클해졌다.


(이 소설은 대체 몇 번을 뭉클하게 하는 건지...)


이렇게 마음에 드는 소설이라니..

소설 속에 등장하는 다정한 사람들, 소설 곳곳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문장과 뭉클한 서사, 결말에 대한 궁금증에 마음에 뺏겨 책을 읽는데 하루를 넘길 수가 없었다.


읽고 나서도 다시 보고 싶은 문장들이 정말 많았는데 책과 함께 보내준 소책자에  문장을 필사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 마음에 들었다. 백수린 작가가 작가 생활 12년 만에 처음 낸 장편이라는데 그전에 쓴 단편들도 궁금하던 차였는데 소책자에는 필사에 이어 단편도 하나 실려있었다. (개이득ㅎ)

찾아보니 밀리의 서재에는 백수린 작가의 산문집이 있길래 그것도 담아놨다.

소설을 읽고 이렇게 마음이 설렌 게 얼마 만인가.


이 소설 덕분에 여유롭고 따뜻해진 마음으로 연휴를 잘 보낼 수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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