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보다 늦은 시작

by 슈퍼엄마

사범대학이 아니라 인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학창 시절 꿈은 방송작가였다. 고3 때 문예창작과에 진학하고 싶어 했지만 부모님과 선생님 모두 반대하셨다. 부모님은 사립학교에 보내 줄 '돈'이 없다 했고 선생님은 작가를 할만한 '재능'이 없다고 했다.
교대와 국립대.. 몇 가지 선택지만 내 앞에 남아 있었다.


그렇게 들어간 대학에는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공부에는 뜻이 없었고 시험 전날에도 읽고 싶은 소설책이나 읽으며 한량처럼 지냈다.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으나 2학년때는 기숙사에서도 쫓겨났다.
(성적순으로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
그 후엔 알바를 세 개씩 하며 공부랑은 더욱 담을 쌓고 지냈지만 문학을 좋아해서 소설과 시수업은 열심히 들었다.
대학 졸업반일 때 서울에 있는 방송 아카데미에 다니려고 준비를 하다 집을 구하러 간 서울 부동산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월세 30만 원 이하로 방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내가 사는 지역에서는 30만 원이면 풀옵션 신축에 살 수 있었다.) 부동산에서 보여준 집은 화장실도 없이 방만 덩그러니 있거나 영화 <기생충>에서 볼 수 있었던 반지하였다.
청무우밭인가 싶어 바다에 갔다가 날개가 젖은 나비처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다음을 기약하며 일단 돈을 벌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일이 학원 강사였다.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일인데 뜻밖에 적성을 발견했다.


'아.. 이거 왜 이렇게 재밌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었고 나를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따라주는 아이들이 너무 예뻤다.


"선생님 덕분에 국어 성적 올랐어요!"

"국어 시간이 제일 재밌어요!!"
그전까지 마른오징어처럼 오그라들어있던 나의 자존감이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사는 보람 같은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하여 방송 아카데미에 등록하겠다고 모아둔 돈을 대학원에 갖다 바치면서 내 인생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대학원에 진학하여 국어교육 석사를 마치고 교원자격증을 취득했을 때 내 나이가 27살이었다.
친구들은 직장 n연차에 돈을 벌어 꾸미고 다니고 남자친구랑 연애를 하고 다닐 때 나는 공시생이 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그래도 서른 전에는 붙겠지...'
그렇게 막연한 기대와 섣부른 판단으로 시작한 공부가 그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다.


하루하루가 지루하고 길게만 느껴졌는데 삼 년은 어떻게 그리 빠르게 지나간 걸까? 그동안 난 무엇을 한 것일까?

시험을 준비하면서 힘든 것 중에 하나는 결과가 모든 과정을 말해준다는 것이다.

'불합격'을 하게 되면 그동안 난 아무것도 안 한 것이 돼버린다. 그렇게 삼 년간 아무것도 한 게 없다는 자괴감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이제 다시 시작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책만 펴도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매년 안부를 묻는 지인들도 만나기 싫었고, 이러다 대인기피증도 생길 것 같았다. 지금 나는 합격이 아니라 일단 살고 봐야 했다.

그땐 사람답게 살고 싶었다.

'일단 일을 시작하자, 그리고 돈을 벌자.'

그렇게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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