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기 위해 기간제 교사 자리를 알아봤다. 1년짜리 기간제자리는 경쟁이 치열했다. 퇴직금도 나오고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고 무엇보다 교사가 된 후에 교직경력으로 인정받아 호봉도 올라간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1차를 한 번 못 붙냐..
1년은 고사하고 6개월.. 심지어 2개월짜리 기간제자리에서도 서류탈락하고 나니 멘탈이 나갈 지경이었다.
서른 살의 무경력 여자를 채용하는 학교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들 경력직만 뽑으면 나 같은 사람은 어딜 가서 경력을 만드나..
서류접수도 무조건 방문접수에다 자기소개서를 자필로 A4두장씩 써오라고 하고.. 읽지도 않을 거면서...'
불만이 쌓여갈수록 내 안에서 '억울하면 시험에 붙던가'하는 싸늘한 소리가 나를 할 말 없게 만들었다. 그렇게 그해 겨울은 서류 접수하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며 몸보다 마음이 열 배쯤 추운 날이 계속되었다.
겨울이 끝나갈 무렵 고모에게 연락이 왔다.
어느 시골 고등학교 국어교사가 결혼 후 신혼여행을 가야 해서 일주일짜리 기간제교사를 구한다는 것이다.
그곳 교장이 고모의 지인인데 사람을 못 구해 애가 탄다며 나에게 일러주었다.
"고모, 누가 일주일 일하겠다고 그 시골까지 가??"
"어이구 네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냐??"
고모는 그 한마디로 내가 처한 현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렇게 나는 충북 음성에 위치한 고등학교에서 일주일, 아니 주말 빼고 5일짜리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게 되었다.
단 5일 일을 하러 온 기간제 교사에게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급식실이 어딘지도 모르는데 아무도 같이 밥 먹으러 가잔 소리를 안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기엔 다들 생기부 작성으로 바쁠 때고, 내가 먼저 물어보면 될걸 그때는 자존감이 바닥이어서 눈치만 봤던 것 같다.
나에게 관심 없는 건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학기말이라 시험도 다 끝났겠다 어차피 며칠 있다 갈 선생님이라고 대놓고 무시했다.
"설마 수업할 건 아니죠? 아무도 안 들을 텐데.."
"그냥 영화나 보여주세요~"
내가 교무실에서는 주눅 들고 눈치보기 바빴지만 학생들에게는 그리 호락호락한 타입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나 수업하라고 돈 주는 거야. 네가 돈 주는 거 아니면 가만있어!"
그래도 대학교 4학년때부터 학원강사로 일하며 아이들 상대하는 일에는 잔뼈가 굵은 편이었다.
'북한도 무서워한다는 중2도 내편으로 만들었는데 고2면 양반이지..'
수업도 정성껏 준비해 갔고 아이들이 고2인지라 곧 다가올 수험생활의 팁, 고3에게 도움이 될만한 자료들도 열심히 준비해 갔다.
그렇게 5일 만에 아이들과 매우 친해졌고 내년에도 자기들을 가르쳐달라는 아이들도 있었다. 겉으로는 웃고 넘겼지만 속으론 무척 감동받아 당장이라도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계약이 끝나던 날,
교감 선생님께서는 곧 학교가 방학인데 방학 동안 국어 보충수업을 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박 선생님이 보충수업해 주면 애들도 좋다던데?!"
교감선생님께서는 짧은 기간이지만 아이들과 잘 지내고 열심히 하는 내 모습을 좋게 봐주셨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 학교에서 한 달 정도 강사로 더 일을 하게 되었다.
일을 하던 중 내가 사는 도시에 있는 한 여고에서 한 학기 국어기간제 교사를 뽑는다는 공고가 올라왔다. 그 지역에서 괜찮기로 소문난 학교에다 한 학기 짜리니 경쟁률이 어마할 것 같았다. 내 경력으로는 언감생심인 자리였지만 일단 지원했다.
그런데 뜻밖에 합격하게 되었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그 학교 교감선생님이 전에 일한 학교 교감선생님과 친구라고 하셨다. 내 이력서에서 경력을 보시고 전 학교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는데 칭찬일색이었다고 하셨다.
내가 애초에 5일짜리 기간제라고 무시하고 계속해서 좋은 자리만 구했더라면 아마 무경력을 벗어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내 상황과 처지에 맞게 작은 일이지만 감지덕지로 여기고 시작한 그 일이 제비처럼 내게 좋은 기회들을 계속 물어다 주었다.
살다 보면 '겨우', '고작'이란 단어들로 평가하게 되는 일들이 있다. 그러나 언제나 기적은 작은 일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