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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Feb 20. 2023

고마운 인연을 생각하며..

10여 년 전 처음 발령받은 학교는 생긴 지 얼마 안 된 신설학교였다. 한 학년에 11 학급인 규모가 큰 학교라 국어교사만도 10명 가까이 되었다.
학교는 회식을 과목별로도 하고 학년별로도 하고 부서별로도 하고 전교직원이 다 하기도 하기도 하는데, 난 특히 과목별로 하는 회식을 좋아했다.

국어과 회식은 토크 대회를 방불케 한다. 하나같이 말씀들을 어찌나 잘하시는지 만담꾼들은 죄다 모인 듯했다. 선배 교사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혼이 쏙 빠질 정도로 재밌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학교생활에 대한 조언들도 많이 해주시고 국어과 막내라고 다들 잘 챙겨주셔서 처음임에도 잘 적응할 수 있었다.

그때 같은 교무실을 썼던 선배 교사는 내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기특하다며 수업연구 모임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셨다. 그 지역 국어교사들이 모여서 수업 연구도 하고 자료도 나누는 공부모임이었는데 모임을 하면서 참 많이 배웠다. 신규 때는 열정만 가득하고 경험이 부족해서 많이 어설프고 서툴다.  나는 그 구멍을 공부모임을 통해 채워나갈 수 있었다. 그때 듣고 배운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 좋았던 기억 덕분에 지금까지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젠 내가 그때의 선배 교사들의 나이가 되었다. 가끔 열심히 하는 후배 선생님들을 보면 공부 모임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데.. 왠지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아 망설이게 된다. 예전처럼 회식하고 남아서 수업연구하던 학교 분위기가 아니다. 코로나가 많은 걸 바꿔놓았다.

그때 공부모임 제안하셨던 선생님은 내가 출산 후 학교를 옮기게 되었을 때도 계속 연락해 주셨고 둘째를 낳았을 때도 집까지 찾아와 주셔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니 어제저녁 선생님께서 연락해 주셨을 때도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오늘 선생님과 만나기로 약속을 하고, 약속 장소에 나가는 동안 옛날 생각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 선생님은 막내가 6살이라 회식장소에도 꼭 데리고 나오셨는데 이제 우리 집 막내가 6살이다. (그 6살은 이제 고2라고;;;)

나는 그 당시 미혼이라 회식장소에 아이를 데리고 오는 선생님의 상황과 입장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는데 선생님은 나를 많이 배려해 주셨다. 아이들도 아직 어린데 한창 힘들겠다며 그래도 지금 아이들이 너무 예쁠 때라며 위로와 조언도 잊지 않으셨다.
선생님과 옛날 얘기도 하고 요즘 근황도 나누고, 아이들 이야기도 나누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국어교사들의 토크타임이란......;;;;;)

요즘은 동료 교사들과 학교 퇴근하면 따로 교류도 없고, 더구나 학교 이동하고 나면 연락도 안 하고 지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지금도 잊지 않고 한 번씩 생각해 주고 연락을 해주는 게 고맙고 마음 한편이 따뜻해진다. 새학기를 앞두고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는 요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이 든다. 올 한 해, 일 년 동안 함께 할 나의 동료들, 그리고 나의 제자들과 즐겁고 고맙고 따뜻한 추억을 많이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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