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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Mar 28. 2023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

올해는 반 아이들과 모둠일기 쓰기를 하고 있다.

4~5명이 한 모둠이 되어 하루에 한 명씩 돌아가며 일기를 쓰고 다음 날 아침에 제출하면 내가 읽고 댓글로 소통을 한다. 그리고 종례 때 다시 나눠주면 다음 사람이 써서 아침에 제출하는 방식이다.

처음엔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 수업준비와 업무만으로도 바쁜데 일기를 읽고 확인하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아이들이 쓰기 싫어서 억지로 쓴다면 나와 아이들의 관계에도 좋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게 기우였을까?

아이들은 모둠일기 쓰기를 꽤 재미있어한다.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늘 한 페이지를 꽉꽉 눌러 담는다. 선생님이 본 다는 것을 알면서도 방과 후 자기의 일상이야기부터 짝사랑하는 그 애에 대한 꽤 비밀스러운 이야기까지 솔직하게 쓰고 있다. 아이들끼리도 친구의 일기를 읽는 게 무척 재미있다고 한다. 일기장을 나눠주기 무섭게 선생님은 뭐라고 쓰셨나 얼른 확인해보고 싶어 하는 아이도 있다. 나 역시 일기를 읽는 것도 재밌고, 반 아이들과 좀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어하길 잘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혹시나  일기에 쓸 내용이 없는 친구들을 위해 맨 뒷장에는 글감으로 활용하기 좋은 주제들을 50가지 정도 써서 붙여놨다. 아이들은 그 글감도 꽤 잘 활용하고 있다. 오늘 한 남학생은 그 글감들 중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이라는 주제로 일기를 써왔다.


그 남학생은 학기 초부터 나에게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말했는데 그런 것 치고는 수업시간에 잘 듣고 따라와 줘서 기특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는 일기장에 타임머신이 생겨 과거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로또 1등 번호를 외워뒀다가 부모님께 알려드릴 거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주식을 사야 하는지도 알려드릴 거라고 했다. 그래서 돈걱정 안 하며 편히 살 수 있게 하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가장 후회되는 일이 공부를 안한일이기 때문에 과거로 돌아가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늦었기 때문에 공부보다는 기술을 배우는 게 나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이가 쓴 글에서 아이의 고민과 바람 등을 모두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일기장 맨 아래에 '공부는 지금시작해도 전혀 늦지 않다'는 말을 쓰다가 잠깐 멈칫했다. 전혀 늦은 게 아니라는 내 말을 아이는 이해할 수 있을까?


나 역시 살면서 너무 늦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종종 있었다.

27살에 학원강사를 그만두고 임용고시를 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가 그랬다. 이제와 공부를 하고 직장을 잡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 서른 살에 시험에 합격했을 때 역시 '늦게 합격' 했다고 생각했다. 결혼을 하던 32살 때에도 늦게 결혼하는 것 같았고, 아이 낳을 때도 너무 늦게 아이를 낳은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아보면 전혀 늦지 않았다. 오히려 요즘엔 남편에게 "나 결혼을 너무 빨리 한 것 같아~ 실컷 놀다 마흔쯤에 할걸.."이라며 농담반 진담반이 섞인 말을 하기도 한다.


뭐든  '늦었다'는 생각에 늘 조급했고 불안했던 그때를 떠올려본다. 그땐 취업, 결혼, 출산 등이 '하고 싶은 일'이라기보다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속도 역시 내가 정하기보다는 사회적 기준, 남들의 시선에 맞추려다 보니 늘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나이 마흔이 넘어 새로운 것에 하나씩 도전하는 지금은 늦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여전히 하고 싶고 설레는 일이 많다는 사실이 감사하고 즐겁다.


공부를 잘하는 것, 기술을 배우는 것은 아이의 바람일까 다른 사람의 바람일까? 아이들이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하고 싶은 걸 하기엔 전혀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우리 인생이 '기록'이 아닌 '완주'를 목표로 하는 즐거운 여정이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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