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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May 12. 2023

10년 전 스승의 날 추억 소환

9

오늘 학교에서 부장님이 2학년 아이들 낌새가 수상하다고 하셨다.
"무슨 낌새요??"
"애들이 스승의 날 준비한다고 학급비를 걷는 것 같아요."
"네? 설마요.. "

몇 년 전 김영란법 시행 이후 스승의 날이 되면 교사들은 마치 죄인이 된 것 같았다. 아이들이 카네이션 꽃 하나를 사 와도 돌려보내야 했다.
"어느 학교 누구는 학생에게 커피세트를 받았는데 다른 학부모가 신고했대~ "
"아니 그거 얼마 한다고 신고까지 하고 그래??"
"얼마가 됐든.. 말 나올만한 일은 아예 하질 않아야지.."
"아니. 커피도 하나 못 얻어먹어?"
"얻어먹긴 왜 얻어먹어? 돈 주고 사 먹어~~~"
교사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했다. 뭘 받아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지만 교사 집단 전체를 싸잡아 불신하고 비리의 온상으로 취급하는 세간의 눈이 야속하고 서운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잘 된 일 같았다. 괜한 오해를 만들 일도 누구 하나 억울하거나 서운할 일도 없다 싶었다.

어쨌든 떠들썩했던 논란도 시간이 지나자 안정기에 들어선 듯하다. 근 몇 년 동안은 스승의 날을 따로 챙겨 본 적도 없고  늘 조용히 넘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들이 돈을 걷는다니??

결국 반장들을 통해 몇몇 학급이 돈을 모아 케이크랑 꽃 등을 사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전부 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주의를 주었다.
"선생님, 그럼 우리 마음은 아무런 표현도 하지 말아요?"
"음... 마음은... 편지로 표현해 ㅎ"
아마 요즘 아이들에겐 돈을 내는 일보다 편지를 쓰는 일이 더 어려울 듯싶다;;;

오늘 해프닝 때문에 첫 교직생활을 맡은 10년 전 스승의 날이 생각났다. 카카오 스토리에 있는 추억을 소환해 본다.

그땐 반 아이들이 직접 만든 케이크에 과자랑 선물(머리띠)도 준비하고 교실도 꾸며서 스승의 날 파티를 해줬다. 교사가 되고 첫 스승의 날이라 고맙기보다는 너무 얼떨떨했다. 아이들이 스승의 날 노래를 부르자 민망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내 반응에 아이들은 다소 실망한 눈치였다.
"선생님.. 감동받아서 우실 줄 알았는데..."
평소에 눈물이 많은 편인데 왜 이럴 땐 눈물이 안 나냐;,,

그런데 뒤이어 아이들은 직접 쓴 편지를 주었다. 서른여덟 명이 한 명도 빠짐없이 편지를..

교실에서 흘리지 못한 눈물을 집에 와서 편지를 읽는 동안 쏟아냈다. 교직 첫해라 스스로 많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자신감을 잃어가던 때였는데 그런 날 믿고 따라주는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고마웠다.

나 역시 이 고마운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까 하다가
편지를 쓰기로 했다.
고등학교 담임이라 매일 6-7시 퇴근, 야자 감독까지 하는 날엔 11시가 다 되어 퇴근했는데 집에 와서 매일 2-3명에게 답장을 썼다. 그렇게 해서 2주 만에 완성된 서른여덟 개의 답장!(한 장 쓰면 정 없다고.... 두 장씩 썼음. 애가 없어서 가했;;;)

첫 단추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내 교직 생활의 첫 단추를 잘 꿰어준 이 아이들 덕분에 지금까지도 교사로서의 내 일을 사랑하며 살고 있.

스승의 날이라고 요란한 행사나 꽃과 선물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사라지는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서운하지도 허전하지도 않게 스승의 날을 보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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