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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엄마 May 15. 2023

황송한 편지

오늘은 스승의 날이다.

점심을 먹고 자리에 돌아왔더니 편지 한 통이 놓여있었다. 지금 우리 반이자 작년에 나랑 동아리 활동같이 한 학생의 편지였다.

작년에 '책수다반'이라는 독서동아리를 했는데 동아리 시간에 책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자신감 있게 발표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던 학생이었다. 그러나 더욱 인상적이었던 모습은 따로 있다. 그건 읽고 쓰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다문화 가정 친구를 잘 챙기고 도와주는 모습이었다. 모둠 활동을 할 때 그런 친구가 있으면 은근히 귀찮아하거나, 소외시키는 아이들이 있는데 이 아이는 잘 못 알아듣는 친구를 위해 천천히 두 번 세 번 말해주고 함께 하려고 했다. 그 모습이 너무 기특하고 예쁘게 보였는데 2학년이 되어 담임으로 만나게 되어 내심 반갑고 좋았다. 

편지 봉투에서 아이의 이름을 확인하고 스승의 날이기도 하니 으레 감사하단 내용을 썼겠거니.. 하고 가볍게 편지를 읽다가 뜻밖에 내용에 놀라기도 하고 감격스러운 마음에 울컥하기도 하였다.


편지 내용의 일부를 살짝 공개한다.


"저는 선생님이 담임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두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먼저, 제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생님을 오래 볼 수 있어서 기쁘다고 생각했고, 두 번째로는 저의 미흡함을 들키게 될까 두려웠습니다. 1학년때 동아리 활동으로 제가 밝고 발표를 잘한다고 생각하셨을 수 있으시겠지만.. 저는 원래 그런 사람이 아니기에 선생님께서 실망하실까 봐 걱정이 되었어요. 이상하게 나를 모르는 사람 앞에선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모르는 사람과 대화할 때 더 편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처음엔 조금 두려웠던 것 같아요. 그러나 선생님과 두 달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함께 하면서 느꼈어요. 선생님은 그런 저를 온전한 나로 봐주시는 분이라는 걸요. 선생님은 언제나 모든 아이들을 섬세히 봐주는 분이란 걸 알아요. 그래서 선생님과 대화를 할 때는 항상 배려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


우선 편지를 읽으며 아이의 마음이 십분 이해되었다.

나 역시 누군가 나를 좋게 봐주고 친하게 지내고 싶다고 다가오면 고맙고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내 안의 다른 모습을 알게 되면 상대방이 나를 싫어하게 될까 봐 걱정했던 적이 있다. 남들이 아는 반짝이는 내 모습 이면에 보이고 싶지 않은 낡고 초라한 모습까지 드러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나의 어떤 모습도 온전하게 받아줄 누군가를 간절하게 바라기도 했다. 편견 없이 그 사람이 가진 다양한 모습을 온전히 이해하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를 그런 사람으로 봐준 사실이 감격스러우면서도 아이가 봐준 것처럼 내가 그리 좋은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겸연쩍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을 편견 없이 대하는,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해 주는 그런 교사가 되어달라는 당부의 말로 들리기도 했다.


항상 느끼지만 내가 사회에서 받는 평가보다 학교에서 받는 평가는 훨씬 후하다. 어른들의 사회에서는 요구도 다양하고 기준도 높지만 아이들은 이보다 훨씬 단순하고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의도를 짐작하거나 오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경우가 훨씬 많다. 

여하튼, 나의 사소한 행동에도 큰 의미를 부여해 주고, 감사하다고 표현해 주는 아이들 덕분에 '내가 어딜 가서 이런 소릴듣고, 이런 대접을 받을까?' 하는 황송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들은 자꾸 나를 더 좋은 사람이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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