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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바닐라라떼 Sep 19. 2020

가끔, 아니 자주 범박한 나에게

괜찮아. 이번 생이 처음이라 그래


범박하다 : : 꼼꼼하지 않아 구체적이지 못하고 두루뭉술하다. [고려대 한국 사전]


범박하다 : 데면데면하여 구체적이지 못하고 범위가 넓다. [표준국어대사전]



'범박하다'를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집 <비행운>이란 책에서 처음 만났다.

 ‘너의 이름은 어떠니’에서 이런 문장이 등장한다.



선배는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쉽게 판단하거나 충고하지 않았고, 범박하고 산뜻한 농담도 잘해 줬다. 상대에게 수치심을 주지 않으면서 위로하는 방법을 알았다랄까.  

비행운_너의 이름은 어떠니 17p


위의 문장들은 내가 선배를 오래 바라봤다는 걸, 동경했지만 좋아도 했다는 걸(17p) 표현하기에 너무도 알맞은 것이었다. 여기에서 작가가 선택한 모든 단어가 좋았지만 ‘범박하고 산뜻한 농담’이 눈에 띄게 좋았다. 낯선 단어에서 느끼는 새로움이랄까. 그 뜻이 궁금해서 ‘범박하다’의 뜻을 검색했다. 이런 결과가 나왔다. 다음 사전에서는 두루뭉술하다로,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데면데면하다로 그것을 설명했다. 두 단어의 뜻도 함께 찾아봤다. 참고로 데면데면하다의 두 번째 뜻이 범박 하다의 의미로 사용되었다.




두루뭉술-하다

 : 1. 모나거나 튀지 않고 둥그스름하다.
   2. 말이나, 행동 따위가 철저하거나 분명하지 아니하다. [표준국어대사전]
데면데면-하다

: 1.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친밀감이 없이 예사롭다.
  2. 성질이 꼼꼼하지 않아 행동이 신중하거나 조심스럽지 아니하다. [표준국어대사전]



뜻을 공부한 뒤 '범박함’에 대해 좀 더 생각한다.


범박하게 말하기, 범박하게 감상하기 그리고 범박하게 살기에 대해.


앞에 ‘범박하게’를 붙이면 조금은 꼼꼼하지 않아도, 조금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이 된다. 이를테면 ‘범박하게 정의해보자면, 범박하게 설명하자면’을 앞에 놓으면 말하고 쓰는 사람도, 듣고 읽는 사람도 조금 편해진다.



고백건대 나는 완벽함보다는 범박함에 가까운 사람이다. 처음엔 꼼꼼하고 야무진 척을 해보지만 얼마 못가 나의 범박함이 그러니까 허당끼가 드러난다. 나의 범박한 성격은 실수로 이어져 나를 곤혹에 빠뜨리기도 하지만 나의 범박함이 때로는 누군가의 날 선 경계를 누그러뜨리기도 하고, 누군가의 실수를 보듬어줄 아량이 되기도 한다. ‘이번 생은 처음이라’는 드라마의 제목처럼 우리 모두 이번 생은 처음이기에  누구나 조금씩 범박할 수밖에 없다. 태어나 처음 겪는 오늘을 꼭 완벽하게 살아낼 필요는 없다. 어떨 땐 범박하게 설명해도 좋고, 범박하게 정의해도 괜찮다. 그리고 범박한 하루를 살아내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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