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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스바닐라라떼 Jul 05. 2021

"드디어 회식한다", 코로나 종식이 두려워진 이유

MBTI 검사를 하면 나는 ESFJ 유형이 나온다. '사교적인 외교관' 이라고도 불리는 이 유형 뒤에는 외향적인 성격에 사회성이 풍부하고, 다른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하며 사회적 상호작용을 통해서 강한 에너지를 얻는다라는 설명이 붙는다.


30년 동안 나도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았다. 집 보단 밖을, 혼자 보단 여럿이 있는 걸 좋아했으니까. 그래서였을까. 입사 한 뒤에 1주일에 2-3번씩 회식을 하고, 주말에는 워크숍을 함께 가도 그러려니 했다. 나중엔 이게 다 좋은 추억이 될 거라고 위안 삼았다.

출처 pixabay 회식


불행히도 난 술을 잘 못 한다. 체질 상 맥주 한 캔을 다 마시기도 전에 온 몸이 빨갛게 변한다. 회사에서는 회식에서 분위기를 잘 띄우고,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을 높이 추켜세웠다. 회식은 직원들의 사기를 진작하고, 동료들 간의 유대감 형성을 위해 한다고 했지만 정작 회식자리에서는 동료들끼리의 대화 대신 상사를 향한 용비어천가를 읊기 바빴다. 술기운에 했던 이야기들은 아침이 되면 술기운과 함께 사르르 사라졌다. 의미 없는 만남으로 채워진 나의 하루는 텅텅 비어갔다.


코로나 - 19 바이러스는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당연했던 일상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됨에 따라 모임이 금지되었고 자연스럽게 회식도 없어졌다. 재택근무를 시작했고, 사람들은 모두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각자의 자리에서 혼자 먹었다.


처음엔 이 모든 것들이 낯설었다. 회사 안에서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쓴 채 일 해야 하는 것도, 퇴근 시간이 되면 당연하게 집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도, 재택근무를 하는 날엔 종일 집 안에 틀어박혀 있어야 하는 것도 모두 낯설었다. 갑작스럽게 늘어난 자유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처음엔 집에서 혼자 티브이만 봤다. 하염없이 모니터만 보다 보니 금세 우울해졌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오롯이 하루 종일 혼자 있는 시간이 정말 오랜만이었다. 티브이를 끄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내가 좋아했던 것들이 뭐가 있었지?


글쓰기.

출처 내 메모장

생각해보면 나는 마음이 어지러운 날엔 습관처럼 메모장에 글을 적었다. 두서없이 글을 적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차분해졌다. 책을 읽다가도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만나면 꼭 어딘가에 적어두었는데, 그런 글들을 옮겨 적다 보면 글을 쓴 작가가 내심 부러워졌다. 내 글이 누군가에게 옮겨진다면 어떨까.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뛰는 일이었다.


온라인으로 글쓰기 수업을 신청했다. 줌으로 듣는 수업이 처음엔 어색했지만, 오프라인으로 듣는 수업보다 오히려 집중도가 좋았다. 글쓰기 수업 후에는 부족한 글이지만 각종 플랫폼에 글을 공개했다. 내가 적은 글 밑에 누군가 남겨놓은 공감했다는 끄덕임 하나에 하루가 깊이 있게 뿌듯해지곤 했다. 꼭 밖으로 나가 사람을 직접 만나고, 서로 부둥켜안고, 술잔을 부딪혀야만 외롭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최근 취업 플랫폼 잡코리아가 직장인 1424명을 대상으로 '코로나 종식 이후에도 지금처럼 유지됐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조사했다고 한다. 이 물음에 2030 세대 응답자의 44.9%는 '회식이나 워크숍 자제'를 꼽았고, 그 뒤로는 '늦은 시간까지 음주가무 즐기는 것을 자제'를 44.1%가 답했다고 했다. 많은 2030 세대들이 위와 같이 답한 걸 보면 그들도 나처럼 혼자서도 외롭지 않게 저녁을 보내는 방법을 터득한 것은 아닐까.


7월 1일 이후 사적 모임 기준인원과 식당 영업시간을 완화하는 새로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된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었는데, 이 발표를 듣고 회사에서는 "드디어 우리 회식할 수 있겠다. 식당 예약할 준비 해라"는 웃음기 섞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거리두기 완화를 시행하기로 한 7월 1일을 하루 앞두고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에서는 현행 거리두기를 연장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거리두기를 연장한다는 발표기사에 조용히 가슴을 쓸어내렸다.


전 세계인에게 거대한 재앙과도 같은 코로나-19 바이러스와 같이 지낸지도 벌써 2년 가까운 시간이 되어간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달라진 많은 것에 적응했다. 아직도 좋은 날씨엔 마스크를 벗어던지고 큰 숨을 들이켜고 싶긴 하지만, 그래도 이젠 마스크를 안 쓰면 마치 옷을 안 입은 것처럼 어색하기까지 하다.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회의가 가능하고, 수업이 가능한 것도 알게 됐다.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는 시간 대신 나와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분명 빼앗긴 일상이 하루빨리 회복되길 기대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거리두기 완화 소식에 덜컥 겁부터 난 이유는 뭘까. 코로나 종식 후에도 그 전의 일상생활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우리가 코로나에 적응했던 시간만큼의 기간과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듯하다. 모든 것이 코로나 전으로 돌아가진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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