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이스바닐라라떼 Dec 03. 2020

때로는 뒷걸음으로 걸어보자

사막 위의 도깨비처럼


"코로나 바이러스 19"


처음엔 금세 지나가겠지 생각했다. 곧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것을 마주한 지 벌써 1년. 사계절을 돌아 다시, 겨울이다. 이름도 증상도 생소했던 그것이 이제는 익숙하다. 마스크에 가려진 사람들의 반쪽 얼굴이, 하루 종일 쓰고 있는 반쪽 가면이, 혼자 먹는 밥이, 전화와 카톡으로 묻는 안부가 이제 당연하다.


기분 좋은 바깥공기를 힘껏 들이마시는 것, 친구들과 둘러앉아 음식을 먹는 것, 예쁜 풍경을 보러 나들이 가는 것,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 부지런히 운동을 다니는 것이 죄가 되었다. 소중한 일상이 죄가 되는 세상은 언제 끝날까.


끝이 보이지 않는 외로움 속, 드라마 도깨비가 생각났다. 2016년 12월에 만났던 도깨비를 다시 보고 싶었다. 아니, 정확히는 끝없는 사막 속에서 하염없이 걷는 도깨비의 뒷모습 위로 '사막'이라는 시가 낭송되는 그 장면을 다시 보고 싶었다.


저승과 이승 사이, 빛과 어둠 사이 홀로 남은 그의 뒷모습이 꼭 우리의 어제 같았다. 허무 속을 하염없이 걷는 그의 걸음이 꼭 우리의 오늘 같았다. 도와주는 사람도, 방향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다.


도깨비 14화 속 저의 최애 장면입니다.


사막_ 오르텅스 블루

그 사막에서 그는
너무도 외로워
때로는 뒷걸음으로 걸었다.
자기 앞에 찍힌 발자국을 보려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코로나에 걸리지 않게 버티는 것이 최선인 요즘. 이전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을 거라는 말에 이제는 누구도 쉽게 반항하지 못한다. 희망적인 미래를 노래하기에 우린 많이 지쳤고 많이 외롭다.


앞으로 내딛는 걸음이 의미 없게 느껴지는 요즘, 4년 전에 만났던 이 시를 다시 꺼낸다. 짧은 시에서 긴 위로를 얻는다. 사막 위의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너무도 외로울 땐 뒷걸음으로 걷는다. 뒤를 돌아 자기가 걸어온 발자국을 본다.


출처 https://www.ogq.me/backgrounds/2185520


우리도 때로는 뒷걸음으로 걸어보자. 앞을 보면 끝없이 펼쳐진 사막밖에 없지만 뒤를 돌아 우리가 걸어온 발자취를 다시 보자. 어떤 준비도 없이 코로나 사태를 맞은 우리는 거의 일 년이라는 시간을 지혜롭게 적응하며 여기까지 왔다.


올 한 해를 고3 담임선생님으로 보낸 친구에게도, 장사한 지 14년 만에 9시에 문 닫는 건 처음이라는 투다리 사장님 우리 엄마에게도, 하늘길이 막혀버린 승무원 친구에게도, 그리고 사회적 거리두기와 개인 방역에 힘쓴 우리 모두에게 우리의 지난 발자국을 보여주고 싶다. 그리고 함께 당연한 것들을 기다리자고 말하고 싶다.



56회 백상 예술대상 특별공연


56회 백상 예술대상에서 이적의 '당연한 것들'이라는 노래로 아역배우들이 특별공연을 했다. 아이들의 목소리가 순수하고 담담해서 더 마음에 와 닿았던 공연이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죠

우리가 무얼 누리는지  


거릴 걷고 친굴 만나고

손을 잡고 껴안아주던 것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것들  


처음엔 쉽게 여겼죠

금세 또 지나갈 거라고

봄이 오고 하늘 빛나고

꽃이 피고 바람 살랑이면

우리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리가 살아왔던

평범한 나날들이 다

얼마나 소중한지 알아버렸죠


당연히 끌어안고

당연히 사랑하던 날

다시 돌아올 때까지

우리 힘껏 웃어요


[이적의 당연한 것들 가사 중에서]


끝도 없는 허무 속에서도 의지할 시가 있고 아이들에게 불러줄 노래가 있어, 참 다행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바로 지울 수 없어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