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창궐하던 어느 날, 작성 글
좋아하는 음료에 관하여 이야기를 쓰다가 다 지워버렸다. 누군가 이 글을 읽게 되었을 때, 나한테도 재미없는 이야기를 보고 '이 사람 참 재미없게 글 쓰는 사람이네'라고 해버리면 속상하니까. 사실 이미 써놓은 글들도 그리고 지금 쓰는 이 글도 앞으로 쓸 글들도 모두 재미없는 글일 수 있다. 나만 쓰기 좋은 글일 수 있다. 그래도 적어도 최소한 나는 재밌어하니까. 그거면 의미 있지 않은가.
오늘과 내일은 짝꿍과 함께 호텔에서 하루를 보낼 예정이다. 호캉스가 해보고 싶긴 했지만, 지금 우리의 집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크게 필요성을 못 느꼈기에 그동안은 다른 친구들이 즐기는 모습만 봐왔다. 그러다 드디어 그 호캉스의 붐에 우리도 뛰어들기로 했다. 다른 게 아니라 목욕이 너무 하고 싶었다. 지난 집은 원룸이니 욕조가 없는 게 당연했고, 이번 집도 크지 않은 집이라 욕조가 없다. 코로나 상황만 아니면 그냥 목욕탕을 다녀왔을 텐데, 시기가 시기인지라 목욕탕을 가기엔 조금 많이 꺼려졌다. 그래서 생각한 게 호텔! 호텔은 욕조도 있지 않은가. 요즘 관광객이 줄어서 그런지 서울의 많은 호텔들이 가격을 낮췄다는 얘기를 듣고 검색을 해보기 시작했다. 나는 검색을 했을 뿐인데 그 쿠키가 인별에게로 넘어갔는지 갑자기 호텔광고가 늘어난 나의 인별☆ 덕분에 어느 호텔에서 제공하는 마음에 드는 패키지를 보게 되어 호텔 페이지에 접속했다. 호텔 페이지를 구경하다가 광고에서 본 패키지보다 더 맘에 드는 패키지로 예약해 버렸다.
예약하고 난 다음 내 계획은 그러했다. 나는 일이 아직 없으니 괜찮고 짝꿍도 일을 쉬게 해서 호텔을 가기 전, 아침에 인천공항을 가는 것이다. 인천 공항에서 여행 가는 기분을 잔뜩 누리고서는 호텔을 가서 입실하면 마치 내가 서울에 여행 온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 계획은 내가 1일 자로 근무를 시작하면서 꼬여버렸다. 일단 체크인을 일찍 못 한다. 근무 첫날부터 월차를 쓸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애초에 사용 가능한 연차가 있을 리 만무하다. 그래서 너무 아쉽고 아깝고 속상하지만 퇴근 후 바로 호텔을 가기로 했다. 목욕은 저녁 먹고 해야지. 그리고 계획을 바꿔서 퇴실 후 공항을 가기로 했다. 인천공항! 마치 해외여행 가는 기분으로! 기분이라도 내자. 계획을 바꿨으니 나의 망상도 수정을 해야 한다. 서울을 관광하는 기분으로 가고 싶었으나 실패했으니, 서울 관광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집도 서울에 있다는 게 함정이지만 그건 상상력으로 어떻게든 메꿀 수 있으리라 믿는다. 짝꿍은 거기에 충분히 맞춰줄 수 있는 사람일 테니 걱정이 없다. 그럴듯한 계획을 머릿속으로 세워가며 우리의 호캉스 첫날을 맞이했다.
호텔에서는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된다. 이 안에서 뭘 먹더라도 크게 정리할 것 없이 쓰레기통에만 잘 넣어두면 된다. 샤워 후 벽과 바닥에 남은 물기를 정리할 필요도 없다. 가만히 누워 있어도 보이는 집안일 거리들에 스트레스 받지 않아도 된다. 집에서는 절대 외출복은 입은 상태로 침대에 눕지 않지만, 호텔은 1박일 뿐인데 뭐 어때하며 외출복을 입은 상태로 누워서 쉬기도 한다. 산책을 나갈 계획이라도 집에서는 누우려면 반드시 실내복으로 갈아입어야 하지만 호텔에서는 괜찮다. 그렇게 잠시라도 귀찮은 행동을 하지 않고 편하게 쉴 수 있다. 누가 집이 제일 좋대. 호텔이 이렇게나 편한대! 침대에서 뒹굴거리면서 다음에도 또 호캉스를 오자며 호캉스의 좋은 점을 서로 하나씩 주거니받거니 읊어댄다. 한강 근처에 있는 호텔이라 산책길도 재미지다. 생각보다 날이 차서 오래 걷지는 못하였지만, 기분 좋은 산책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왔다. 오래간만에 하는 목욕, 생각보다 괜찮은 전망, 집이 아닌 곳에서 자는 그 설렘, 그리고 조식. 모든 것은 완벽했다. 몸이 편하니 마음도 편하고 그렇게 우리의 시간이 즐겁게 흐른다. 내일은 또 얼마나 재미있을지, 우리의 여행놀이가 또 얼마나 흥미진진할지 기대된다.
그리고 다음 날, 완벽했던 계획에 단 하나 간과한 것이 있다면 그건 나의 체력이었다. 간만에 출근을 했더니 주중에 소진된 체력에 도저히 인천까지 1시간 반에 걸쳐 전철을 타고 갈 자신이 없었다. 1박을 위한 짐도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고민 끝에 집으로 돌아간다. 현관문을 여니 포근한 공기가 나를 반긴다. 그리고 미뤄둔 집안일거리도 나를 반긴다.
아, 좋다. 너저분함 속에서 느껴지는 이 아늑함.
우리 평생 이렇게 너저분하고 재밌게 살아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