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2월의 어느 날 작성 글
학원에서 일을 할 때는 발목이 아팠다. 많은 시간을 서서 일했기 때문일까. 불규칙해진 식습관으로 인해 식도염도 다시 생겼다. 스트레스로 인한 이관염이라는 새로운 병명도 들었다. 13시 출근 22시 퇴근은 나에게 매혹적인 조건이었다. 일단 지옥철을 경험하지 않아도 된다. 감기는 눈을 애써 뜨며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 근무시간 외에도 좋은 환경이었다. 좋은 선생님들과 학생들, 그리고 학부모들까지 다 매우 좋은 사람들이었다. 문제는 나는 이 환경을 좋아했지만 내 몸은 그렇지 않아 했다는 것이다.
초등 수학을 가르치면서 부족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난 너무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학부모들과 통화를 할 때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종종 정신을 현관문 앞에 또는 전철에 두고 오는 사람이었다. 비록 꿈꿔왔던 학교 선생님은 아니지만, 학원 선생님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받아왔던 나였기에. 학원에서도 충분히 나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교육학을 배우면서, 이런저런 활동을 통해 많은 아이들을 만나 오면서. 학습을 통해 경험을 통해 그리고 수많은 고민들을 통해 생각해 놓은 '이상적인 선생님'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 이상향을 쫓아가고자 노력했다. 다시 말하면 그 이상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혐오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함께 근무하던 다른 선생님을 보면서 더욱 그리해졌다.
어리지 않은 나이에 처음 학원에서 근무하게 되었으니 당연히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가르치는 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정식적으로 수업을 진행하는 것은 처음이니 당연히 부족한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여러 시범강의 끝에 받은 평은 분명 좋았다. 처음이기 때문에 있을 수밖에 없는 부족함이 있지만 1~2년 수업을 하다 보면 채워질 거라고 조언해 주셨다.
심지어 학생들도 대부분은 나를 좋아해 줬다. 낯을 가리는 듯 보였던 학생은 어느샌가 나에게 다가오게 되었고, 수업 중에 수업 외적인 것으로 곤란하게 하는 한 명의 다른 학생들이 먼저 다그치며 나의 편이 되어주었다. 심지어는 나의 실수로 인해서 한 어머님께서 분노하신 일이 있었는데, 화내는 어머님을 본 아이가 '선생님 좋은데 엄마는 왜 화가 난 거야?'라는 질문에 어머님의 모든 분노가 사그라들었다는 그런 감동적인 에피소드도 있었다. 제 3자가 보면 잘하고 있다고 얘기해 줬을 것이다. 실제로 집 가는 방향이 비슷하여 함께 전철을 타던 선생님께서도 잘 적응하고 있다고. 조금 힘들겠지만 금방 익숙해질 거라고 너무 부담 갖지 말라고 해주셨다.
하지만 난 그 부족한 부분을 용납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나보다 두 살 적은 선생님들은 꼼꼼하게 실수 없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더더욱 그랬다. 그들은 나보다 일찍 시작한 일이었으니 내가 없던 때에 비슷한 실수를 했었을지도 모른다. 그들 또한 나는 모르는 어떠한 실수를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나를 위로하고자 할 때 아주 잠깐 스쳐가는 생각이었을 뿐,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잘 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왜 나는 이것밖에 안될까 하는 자괴감에 빠졌다. 정말 사소하게는 글씨체로도 자괴감에 빠졌을 정도니까.
사실 이건 나의 문제였다, 자존감과 자신감의 결여로 인해 작은 실수조차 크게 받아들여버리는 것이다. 나를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많고, 내가 실제로 일을 해나가는 모습을 보며 긍정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피상적으로 아는, 하지만 나를 꽤나 잘 파악했다고 생각했던 이가 보내었던 부정적인 몇 마디를 붙들며 나를 깎아내리고 있었다. 이걸 누군가가 끊어줘야 하는데 이를 끊어줄 사람이 없었다. 이 생각을 끊어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였으나, 나는 그런 생각을 끊기는커녕 끊임없이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나는 어디서든 잘할 거야. 늘 그래왔으니까'라고 말했지만(사실은 그들이 먼저 그렇게 얘기해 줬다), 이는 나의 희망사항일 뿐. 나는 뭐든 잘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쩌면 내 기준이 너무 높았던 걸 수도 있다.
어쩌면 내가 정말 무능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나는 정말 무가치한 존재일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이 나를 갉아먹을 때 즈음, 나는 나를 포기하기로 했다.
선생님을 포기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