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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Oct 23. 2017

엄마의 수요일엔

아이가 이제 학교에 가기 시작한 지 두 달, 그 사이 제 생활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습니다. 저만의 일주일 스케줄을 만들기로 한 것이지요. 그 날이 그 날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기보다는, 월요일의 색깔, 화요일의 색깔,..., 일요일의 색깔, 그렇게 예전에 회사를 다닐 때처럼 그 날에만 느낄 수 있는 색깔이 있기를 바랐거든요. 


제일 먼저 일주일의 중간, 수요일의 색깔을 칠해보기로 했습니다. 이 날은 뭔가 배워보기로 마음먹었지요. 영어를 배울까, 요리를 배울까, 미술을 배울까 고민하던 어느 날 시카고 시내를 혼자 산책하다가  프랑스 문화원 '알리앙스 프랑세즈' 간판을 보게 되었습니다. 단풍이 정말 이쁘게 들기 시작한 건물이었지요. '이거다!' 싶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잠깐이었지만 정말 재밌게 배워서 언젠가는 꼭 한 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거든요. 이거야 말로 다시 제가 A, B, C부터 시작해야 되는 것이니 마음 조급할 것도 없고, 무엇보다도 그 장소가 정말 시카고 속 파리처럼 아름다웠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프랑스어 기초반을 등록했습니다. 그렇게 처음으로 제 일주일의 하루가 색이 칠해졌습니다. 



그다음으로 색을 찾은 요일은 목요일이었습니다. 이 날은 예전처럼 일을 해 보기로 했지요. 물론 지금 제 비자는 말 그대로 '외국인 노동자 아내 비자'이기 때문에 취업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 봉사 활동으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 우연히 찾아갔던 YWCA의 홍보 마케팅팀에서 일주일에 하루 일을 시작할 수 있었지요. 물론 무보수지만, 그래도 제가 10년 동안 해왔던 홍보와 연관된 일이었기 때문에 예전에 회사에 나가 일을 할 때와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나간 날은 제가 대학 졸업하고 인턴으로 들어갔던 첫 직장, 홍보대행사 버슨 머스텔러에서의 업무와 비슷한 수준의 일이었습니다. 뉴스 검색하고, 타이핑하고 그런 일이었지요. 그래도 감사하게도 매주 갈수록 일이 아주 조금씩 업그레이드되고 있긴 합니다. 예전 돈 벌며 회사 다닐 때였다면, 이 일을 도대체 나한테 왜 주는 거야, 했을 테지만 제가 커리어상 헝그리 한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이런 일 시켜주는 상사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그 외의 날들은 조금 여유 있습니다. 그런 날들은 요가를 가기도 하고, 느티나무 도서관에서 빌려온 한국 책들을 읽기도 하고, 빨래와 청소를 하기도 하고, 빛이 잘 드는 거실 소파에 누워서 노래를 듣다가 스르르 낮잠을 자기도 하지요. 사실 아이가 학교를 가있는 시간은 정말 쏜 화살처럼 빨리 지나가요. 그래도 이렇게 저만의 시간을 보내고 나면 아이가 학교에서 끝날 때쯤이면 얼른 아이를 데려와서 재밌는 저녁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힘이 불끈 생기기도 하죠. 



아직은 내가 무엇이 되겠다, 라는 큰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엄마로서의 역할에 좀 더 집중하면서 이렇게 하나하나 제 일상에도 색을 하나씩 채워가는 시간인 것 같습니다. 천천히 둘러보며 걸어가는 이 시간도 지금 제겐 충분히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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