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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Jul 28. 2017

잠수교 백사장 소식에 대한 단상

VS 시카고 공공 예술, 크라운 파운틴 

이제 시카고에 저와 가족이 제대로 정착한 지 딱 반년이 지났습니다. 여기 오래 사신 분들에 비하면 아직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젠 이 도시에 대한 애정도 생기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다른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으면 좋겠는 생각을 하기도 하지요. 이 또한 직업병인가 봅니다. 


제가 생각했을 때 시카고의 자랑거리를 꼽으라면 처음으로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퍼블릭 아트입니다. 길거리 곳곳에서 샤갈의 대형 모자이크나, 피카소와 알렉산더 칼더의 공공 미술 작품을 발견할 수 있지요. 그중에 이 여름에 꼭 소개하고 싶은 것은 바로 밀레니엄 파크에 있는 '더 크라운 파운틴(The Crown Fountain)'입니다. 스페인 출신의 하우메 플렌사(Jaume Plensa)가 2004년에 제작한 이 공공 미술 작품은 아트이기도, 또 분수에 물이 나오는 여름에는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합니다. 



가운데 넓은 공터를 사이에 두고 양 쪽 옆으로 15.2미터 높이의 높은 전광판에는 시카고 시민들의 얼굴이 비디오로 나옵니다. 표정이 계속 변하기 때문에 마치 이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그 전광판 속 사람과 마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되죠. 재밌는 것은 어떤 사람의 입에서는 실제 물이 뿜어져 나옵니다. 아이들은 그것을 놓칠세라 전광판 앞으로 뛰어가서 깔깔 거리며 물벼락을 맞습니다. 



이 곳은 대표적인 '유니버설 디자인'의 공공 아트입니다. 누구나 쉽게 들어오고 나갈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곳입니다. 물에 들어가서 흠뻑 젖고 싶은 아이들도, 그 모습을 지켜보며 쉬고 싶은 어른들도, 그리고 뜨거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잠깐 들르는 관광객도 누구나 하루의 쉼표를 찍을 수 있는 공간이지요. 문턱도 없고, 물이 깊지도 않아 휠체어를 타고 물에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반포대교 잠수교에 이번 주말부터 사흘 동안 810톤의 모래를 쏟아부어 '잠수교 비치'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단 사흘 동안을 위해 말입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여름마다 만드는 인공 비치 '파리 플라주'를 벤치마킹해서 만든다는 것이지요. 잠수교의 모든 교통 통제를 하고, 모래사장을 만들어 휴양지에 온 느낌을 물씬 느낄 수 있게 워터슬라이드 설치, 마임 공연과 길거리 음식도 팔 거라고 합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28일 0시부터 엄청난 양의 모래를 공수하는 '작전'을 펼칠 것"이라며, "어르신들에게도 6,70년대 한강 피서지의 아련한 추억을 선사할 것"이라고 합니다. 


한강 다리에 모래 810t 백사장,‘잠수교 비치’로 가볼까 - 중앙일보 

http://news.joins.com/article/21793137 


과연 몇 명의 '어르신'들이 젊은 사람들로 가득 차고 넘칠 그곳을 찾으실지는 모르겠습니다. 또 이것이 서울시가 생각하는 '예술'에 해당되는 건지, '복지'에 해당되는 건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예술이라고 하기엔 중국을 흉볼 것 없이 서울이 어느 유럽 도시의 짝퉁이 되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에 울적한 마음이 들고, 또 복지라고 하기에는 이 세금을 더 의미 있는 곳에 쓰는 것이 좋지 않을까 화도 납니다. 


다행인지 아닌지, 집중 호우로 인해 이 행사가 2주 연기되었다는 뉴스를 이 글을 마무리하는 중에 들었습니다. 정말로 더 많은 시민들이 이 여름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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