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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Nov 15. 2017

10년 차 무급 인턴사원이 되다

미국 와서 시작한 첫 봉사 활동

아이가 유치원에 가기 시작한 지 이제 두 달. 처음 몇 주는 학교에 가기 싫다고 들어갈 때마다 한참을 목놓아 울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학교 가는 걸 좋아합니다. 집에서 한국말만 쓰던 두 살 반 아기가 하나도 못 알아듣는 영어 환경에 두는 것이 얼마나 큰 스트레스일지 엄마로서 참 미안하기도 했지만, 고맙게도 아이는 두 달 사이에 제법 적응했습니다. 이젠 선생님 말씀도 몇 마디 알아듣고 yes, no, thank you so much, excuse me, good job, bless you! 등 기본적인 자기 의사표현도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집에 오면 유치원에서 배워 온 동요도 혼자서 흥얼거리고 어떤 날은 Twinkle Twinkle Little Star를 처음부터 끝까지 불러서 엄마를 놀라게 한 적도 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엄마보다 좀 더 빠른 속도로 미국 생활에 잘 적응해나가고 있습니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 놓고 저도 이제 제 할 일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대학원을 다녀볼까, 영어를 배워볼까, 도자기를 배워볼까, 여러 가지 생각을 해봤지요. 그런데 딱히 지금 제 마음에 와 닿는 것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전 지금 일 년 전에 두고 온 제 일을 다시 찾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외의 것들은 제 시간을 채워 주기는 하겠지만 제 마음까지 채워주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제 신분은 말 그대로 '외국인 노동자의 아내'입니다. 직업을 갖기는커녕,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것도 안 되는 그런 비자지요. 앞으로 몇 년간은 그런 조금 답답한 신분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제 마음을 더 답답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을 한 것이 바로 봉사활동이었습니다. 지금 제가 필요한 건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것보다도 제 경력을 끊기지 않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원하는 일이었으니까요. 되도록이면 제 홍보 경력과 연결도 되고, 또 앞으로 제가 여기서 어떤 새로운 분야를 해볼 수 있을까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찾은 것이 바로 YWCA 메트로폴리탄 홍보팀에서의 무급 인턴 자리입니다. 나중에 원하면 횟수와 시간을 늘릴 수 있겠지만, 우선은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가서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10년 전에 제가 대학 4학년 때 처음으로 인턴을 했던 홍보대행사 시절이 생각났습니다. 자료 서칭 하고, 타이핑하고, 엑셀 정리하고, 가끔은 행사 지원도 나갑니다. 졸업 후에 한 자리라도 얻고 싶어서 열심히 최선을 다했던 24살 때 모습으로 돌아간 느낌이었습니다. 그 느낌이 별로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말 신선하고 좋았습니다. 오히려 지난 10년 간 브랜드 홍보맨으로서 지냈던 시간들이 마치 지난밤 꾸었던 꿈같았죠.



몇 년 후에, 제가 미국에 살면서 정식으로 일할 권리가 주어졌을 때, 정말로 예전처럼 일을 할 수 있을지, 일을 하고 싶어 질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되면 저도, 환경도 지금보다는 더 변해있을 것이고, 그때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는 아무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도 제가 지금, 가끔은 일하러 나가기 싫고 집에서 뒹굴고 싶은 날에도 꺼덕거리며 나가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는 나중에 아이에게 엄마가 여기 와서 신세한탄만 하면서 살지는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고, 둘째로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이 크게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이 또 다른 새로운 길로 연결이 되는 길일 것이란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주저앉아있기보다는 제가 내디딜 수 있는 한 걸음을 내딛는 게 맞는 거겠지라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올해는 이제 연말이 얼마 안 남았으니 이렇게 마무리를 하고, 내년에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 제가 관심 있는 분야에, (홍보 일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있으면 일주일의 또 하루를 봉사 활동에 써볼 계획입니다. 한창 커리어적으로 잘 나가야 될 30대 중반에 왠 거꾸로 봉사활동 타령이냐, 불쌍하다 해도 딱히 할 말은 없습니다. 이게 지금 제 삶이니까요. 전 그냥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나만의 방식대로 삶을 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는 겁니다. 이 길이 부디 지금 제 눈 앞의 자욱한 안개를 언젠가 벗어나게 해줄 것이란 희망을 갖고 말이지요. 결국 저는 지금 제 인생의 오솔길 또 한 구비를 지나고 있는 중일 테니까요.



미국에서 봉사활동 찾는 방법

1. 매칭 웹사이트 (www.volunteermatch.org)

자기 관심 분야와 사는 지역을 체크하면 정말 다양한 분야의 봉사 활동 기회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꽃꽂이, 요리, 노래, 기본적인 오피스 업무까지,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일을 간접적으로 시작해볼 수 있습니다.


2. 박물관 웹사이트

미국에서는 봉사 활동이 마음 착한 특별한 소수가 하는게 아니라 하나의 문화인 것 같습니다. 어린 학생부터 봉사 활동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아저씨들까지 아이들 학교에서 이런저런 봉사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 인기있는 봉사 활동 자리는 경쟁도 치열하고 대기도 오래 해야되는데요, 제가 사는 시카고에서 가장 인기있다고 할 수 있는 곳은 바로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입니다. 이미 800명이 넘는 봉사자들이 활동하기 때문에 신청을 하더라도 언제 제 차례가 올지 모르지요. 내년에 한 번 일해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http://m.artic.edu/node/1048


3. 직접 찾아가기

이건 사실 별로 추천하지는 않지만, 제가 이번 봉사 활동 자리를 찾은 방법이긴 합니다. 사실 다른 걸 물어보러 갔다가 제 소개를 하게 되고 제 경력에 관심이 있었던 담당자 덕분에 자리를 얻을 수 있었지요. 조금 무모해보이지만, 가끔은 이런 행운이 우연히 찾아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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