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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Nov 16. 2017

아이와 길고 긴 시카고 겨울밤 나는 법

시카고는 이제 겨울이 다가와서인지 오후 4시만 지나면 어두컴컴한 저녁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평소보다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려오는 시간이 점점 빨라지죠. 창 밖이 어두우면 왜 엄마가 안 올까 아이가 걱정할까 하는 괜한 염려에 말입니다. 아이를 일찍 데려오는 건 좋은데 그만큼 집에서 보내는 저녁 시간이 길어지니 이 또한 고민입니다. 왜냐면 아이가 이제 TV의 재미를 알게 되어서 학교에서 돌아오면 자동으로 TV를 틀어달라고 조르기 때문이죠. 영 마음에 안 들어도 제가 혼자서 저녁 준비도 하고 아이를 기분 좋게 씻기고 하려면 저도 모르게 리모컨을 틀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한 육아서를 봤는데 모든 아이들은 다 비슷한 성장 과정을 갖고 있는지, 저와 비슷한 고민거리를 갖고 있는 부모의 이야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저자인 소아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답변이 아이가 유치원에서 돌아오면 최대한 다른 것으로 관심을 분산시키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TV가 눈 앞에 있는 이상 책이나 장난감을 갖다 줘 봐야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아예 밖으로 나가서 놀이터를 가든지 놀이거리를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는 날씨가 춥기 때문에 이제 밖에 나가서 저녁에 노는 것은 불가능하니, 바로 밤늦게까지 문을 여는 도서관 당첨!



미국은 동네마다 퍼블릭 라이브러리가 활성화되어있는데, 제가 사는 시카고 도심에도 Harold Washington Library라는 큰 도서관이 있습니다. 지난번에도 한 번 소개를 했었는데 여기 어린이 도서관은 정말 잘 만들어져 있어요. 널찍한 공간에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실내 놀이터도 있고,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 가구들과 시즌별로 잘 정리된 책들이 있어 (책을 앉아서 침착하게 읽는다기 보다는) 책과 함께 노는 공간입니다. 마침 수요일이었던 오늘은 스토리 타임 수업이 있는 날이라 더 좋았지요. 한 시간 동안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도서관 선생님과 책도 읽고, 춤도 추고, 크래프트도 만들면서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지난주에는 부엉이가 주제였고,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있는 이번 주는 터키가 주제였습니다.



도서관에서 두 시간 넘게 신나게 뛰어놀다 온 아이는 다행히 피곤했는지 집에 와서 샤워하고 'TV는 딱 하나만 보고' 좀 놀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습니다. 아이를 도서관까지 데리고 갔다 왔다 하느라 제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편안합니다. TV 앞에 아이를 저녁 내 앉혀놓느니, 이런저런 좋은 프로그램을 찾아 아이와 함께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도 참 괜찮다 싶었습니다. 내일은 TV를 피해 또 어디로 도망가볼까, 엄마는 오늘 밤 재밌는 고민을 좀 해볼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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