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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Dec 20. 2017

막내 시카고 텃새의 꿈

이방인 생활 일 년 차

다행인지 불행인지 난 10년 동안 회사를 다니며 선배였던 적이 한 번도 없다. 즉 내 밑에 후배가 들어온 적이 없다는 뜻이다. 사회생활 첫 3년을 보냈던 홍보대행사에서는 내가 막내였기 때문에 막내 생활을 했고 그 이후 7년을 보낸 회사에서의 홍보팀에서는 외국계 회사의 적은 인원 특성상 (직급상) 과장이자 동시에 막내인 생활을 했다. 뭐 나보다 한두 해 정도 경력이 적은 직원이 들어오기도 했지만, 내 성격상 사실 그 정도는 후배라기보다 동료고 한 배를 탄 전우다.


나름 10년 동안 그 누구보다도 긴 막내 생활을 해보면서 사실 안 좋은 점보다 좋은 점이 더 많았다. 그중에 제일 좋은 점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되는지 배울 수 있었단 것이다. 막내로 오래 있다 보면 어떤 사람이 진짜 리더십이 있는 건지, 어떤 사람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혹은 높은 자리에서 내려왔을 때 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나갈지 대충 눈에 보인다. 사람이라는 게 자기보다 힘 있고 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최선을 다해도, 아래여서 별 도움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까지 챙겨볼 여유는 없으니까 말이다. 정말 운 좋게도 난 정말 가까이에서 이런 고정관념을 뛰어넘는 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내가 회사를 중간에 그만둔 것에 대해 아쉬움이 있다면 그건 사실 돈도 아니고, 경력도 아니고, 내가 그분들께 보고 배운 만큼 나중에 후배들에게 괜찮은 선배가 되어보고 싶었는데 그걸 해보지 못한 게 아쉬울 뿐이다.  


미국에 와서 난 다시 막내가 되었다. 나이를 뜻하는 게 아니라 이방인이 된 횟수로 따져서 다시 막내란 뜻이다. 막내가 팔자인 건지 아무튼 그렇다. 그런데 재밌는 것이 여기서도 똑같다. 아무 힘없고 줄 것 없는 막내 이민자로 일 년을 살아보니 여기 사람 사는 것도 회사 다니며 사회생활할 때와 바를 바 없구나 생각이 든다. 닮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시카고의 텃새가 되기 위해 이 곳으로 날아온 지 1년. 좀 더 시간이 지나 여기가 진짜 내 집 같아질 즈음이 되면, 지나가는 철새도 품어줄 수 있는 진짜 괜찮은 텃새가 되고 싶다. 그게 내 10년 사회생활 동안 괜찮은 선배 노릇 한 번 해보지 못하고 끝낸 아쉬움을 달래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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