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언니의 수학 생일 파티

by Silvermouse

흔히들 미국 생활은 서울살이에 비해 많이 단조롭다고 합니다. (아, 물론 싱글로 사는 것 말고 가족이 다 함께 사는 경우 말이지요.) 한 해를 꽉 채워 살아보니 어떤 점에서는 그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야 제가 직장도 있었고 친구도 많았고, 늦은 밤 갈 곳도, 구경할 것도 많았는데, 여긴 대부분의 시간을 집 안에서 가족들과 지내고 외식 보단 집에서 요리하는 집밥을 해 먹는 날이 훨씬 더 많습니다. 상점들은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딱히 밤에 나갈 곳도 없고요. 그래서인지 모든 생활이 가족 중심, 아이 중심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미국의 가족 중심 문화를 느낄 수 있는 대표적인 것이 아이들 생일 파티인 것 같습니다. 보통 4,5살 정도가 되면 유치원 친구들, 동네 친구들을 모아서 생일 파티를 여는데 이 날은 아이들만 모이는 것이 아니라 엄마, 아빠가 모두 함께 참석을 하지요. 물론 모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항상 생일 파티에 가보면 열에 아홉은 그런 것 같습니다.


지난주에는 제 친구 아이의 재밌는 4살 생일 파티에 다녀왔습니다. 맨 처음 초대장을 받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주소를 쳐보니 웬 수학 학원이 나왔기 때문이지요. 요즘 이 동네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생일 파티 장소는 Pump it up 같은 뛰어노는 시설이라 그런 걸 기대하고 있었는데, 수학 학원이라니! 제 친구에게 혹시 초대장에 오타난 게 아니냐 물어보려는 순간, 어쩌면 이 장소가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Taylor's 3+1 Birthday Party"라는 문구를 확인했기 때문이죠. 나중에 물어보니, 아이가 요즘 수학을 너무 좋아해서 수학을 테마로 파티를 하고 싶다고 했답니다. 주제가 너무 어려워서 스케이트 파티, 과학 실험 파티 등 다양한 대안을 얘기했지만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그리하여 이 친구는 수학 학원 한 군데를 섭외해서 새로운 형식의 파티를 시도하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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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보니 정말 간판이 수학 학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존에도 이런 파티를 해본 적이 있는 곳인지 물었더니, 한 번도 없고 이번에 첫 시도라고 했습니다. 제 친구의 생일 파티 장소 제안을 받은 이 곳 선생님도 본인이 수학 학원을 오래 운영하면서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며 너무 재밌는 아이디어라고 했답니다. 그리고 4살 아이들을 위한 생일 파티 프로그램을 개발했지요. 아이들도 신기해하고 엄마도 궁금증을 일으키는 수학학원에서의 생일 파티가 드디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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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명 정도의 아이들은 5 그룹으로 나누어서 각 테이블에 앉아있는 수학 선생님에게로 모였습니다. 저희 아이는 아직 두 살이라 모든 그룹에 참여하기는 어려울 것 같았는데 그래도 언니, 오빠들 쫒아서 열심히 따라 했습니다. 모든 게임은 숫자와 연관이 있었는데, 가장 처음으로 한 것은 아이들이 한 번씩 휠을 돌려서 나오는 숫자만큼 그림에 색칠을 하는 게임이었습니다. 마치 우리 어린 시절 공문 수학을 하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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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게임들도 정말 단순하지만 재밌게 만들었습니다. 선생님과 게임을 하고 그 수에 맞춰서 색칠을 하는 것이었지요. 구슬을 꿰어 좋아하는 색깔로 목걸이를 만들기도 하고요. 아이들은 재밌게 놀면서 숫자를 배웠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이 수학 학원은 무슨 수학 영재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수학의 원리를 재밌어하고, 좋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 교육 목표가 있다고 했습니다. 선행학습을 중요시하는 한국의 수학 학원이랑은 좀 많이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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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이들에게 제일 인기가 많았던 피나타. 멕시코의 전통 놀이기도 한데 상자 안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초콜릿, 사탕이 가득하고 그걸 터뜨려서 아이들이 주워 담는 놀이지요. 여기에서도 역시 수학을 테마로 피나타를 만들었는데요, 아이들에게 숫자가 적힌 종이봉투를 하나씩 나눠주고 1번부터 차례대로 나와서 피나타에 연결된 리본을 하나씩 잡아당기는 겁니다. 저 많은 리본들 중에 하나가 상자를 터뜨리는 열쇠가 되는 것이지요. 아직 말귀를 못 알아듣는 저희 아이는 꽤 앞 번호인 8번 봉투를 들어서 혹시 나가서 실수해서 모든 리본을 다 뽑아 버릴까 봐 조마조마했는데, 다행히 6번에서 피나타가 활짝 열렸습니다. 휴!



아무리 수학 학원에서의 이색 생일 파티라고 해도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 생일 케이크 시간은 빠질 수 없습니다. 다 같이 노래를 부르고 피자를 나눠먹고 생일을 맞은 친구가 주는 답례품을 하나씩 받고서 생일 파티는 끝이 났습니다. 참석한 아이들과 엄마들 모두 이런 생일 파티는 처음이라며 다들 칭찬을 가득하고 떠났지요.


집에 오는 길에 아이가 참지 못하고 답례 선물 가방을 열어보니 역시나 파티의 테마에 맞춰서 숫자 공부 책, 주사위, 자 등이 들어있었습니다. 아마 이 파티를 기획한 제 친구는 자기 결혼식보다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지요. 수학 학원에서 4살 아이들의 생일 파티라니요! 다시 생각해봐도 이걸 해볼 수 있냐고 묻는다면 전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우리 아이도 수학을 너무너무 사랑하게 되면 어쩌지요? 엄마는 오늘도 김칫국부터 마시며 아이와의 하루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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