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파리 개선문에서의 카운트 다운
드디어 우리의 첫 시카고 생활에도 연말이 찾아왔습니다. 매주 출장을 다니며 바쁘게 살던 남편도 크리스마스를 즈음해서는 예상치 못한 1주일 휴가를 덤으로 받아 휴식에 들어갔습니다. 아이의 데이케어는 23일부터 새해 2일까지 긴 방학에 들어갔지요. 원래는 남편의 휴가가 시작되는 1월 1일에 한국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이렇게 덤으로 생긴 1주일 휴가를 집에서 보내기는 아쉬워 우리 식구는 어딘가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미국 내에서 다른 도시로 여행을 갈까 알아보다가 연말이라 비행기도, 호텔도 가격이 배로 오른 상태라 이럴 바에는 아예 다른 나라로 떠나보기로 했습니다. 겨울이라 마땅한 후보지가 떠오르지 않았는데, 남편이 파리 개선문 앞에서 우리 세 식구 새해맞이 카운트 다운을 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사람 많고 북적거리는 곳을 싫어해서 종로 보신각 종소리도 삼십여 년을 TV로만 봐왔는데 개선문이라니요! 그래도 남편의 버킷 리스트를 하나 지워주기 위해서 우리 세 식구는 그렇게 며칠 만에 호텔을 예약하고, 티켓을 끊고 파리로 떠났습니다.
사실 파리의 이 시기는 두 살 반 아이와 여행하기에 완벽하게 좋은 날씨는 아닙니다. 하루 해가 무척 짧은 파리의 겨울은 스산하기도 하고 비도 오고, 시카고의 바람만큼 춥지는 않지만 뼛속까지 찬 기운이 깊숙이 들어오는 느낌이 들지요. 그래서 이번 여행의 목적은 너무 많이 돌아다니거나 구경하려고 하지 말고 아이의 컨디션을 잘 조절하면서 천천히 파리에 일주일 머물기로 했지요. 단 하나의 목표만 이루고 가자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바로 12월 31일 개선문에서의 2018년 카운트다운! 그래서 이번엔 호텔도 제가 좋아하는 마레 지구 대신 아예 개선문이 있는 샹젤리제 거리 한복판에 있는 곳으로 골랐습니다.
파리에서의 며칠을 보내고 드디어 2017년 마지막 날. 그 날은 다행히 비가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하늘이었지만 유모차를 밀고 다니기에 적당한 날씨였습니다. 비도 잠깐잠깐 오기는 했지만 그래도 우산을 쓰고 다녀야 될 정도는 아니었어요. 그 날 우리가 찾은 곳은 노트르담 성당. 성당 앞에는 1월 초까지 크리스마스트리가 장식되어 있었습니다. 아주 화려하고 입이 떡 벌어지는 스타일은 아니었지만, 무심한 듯 서 있는 그 장소와 잘 어우러지는 크리스마스트리였습니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여느 때보다 더 많은 관광객들이 성당을 들어가기 위해 긴 줄을 서 있었습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에도 연말 장식이 되어있었습니다. 성당 앞에서 본 크리스마스트리와 색깔이 비슷한 리스가 장식되어 있었고, 하늘엔 반짝이는 큰 별이 떠 있었지요. 전에도 이 곳을 몇 번 찾은 적이 있었지만, 이 날 보았던 성당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아름다웠습니다. 무척 외로웠던 20대 언제인가 이 곳에 와서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달라고 혼자 기도를 했었는데, 저도 모르게 그 소원이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이렇게 남편과 아이와 셋이서 다시 이 곳을 찾게 될 줄 몰랐거든요. 기도하고 있던 그때의 저를 만나게 된다면, 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말고 편안한 마음으로 살라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고맙게도 아이는 성당을 들어가는 것을 아주 좋아하는데, 그곳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촛불을 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당 안에는 2유로를 내고 촛불 봉헌을 할 수 있는데 노트르담 성당처럼 큰 성당에는 그렇게 봉헌을 할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 있기 때문에 아이와 성당을 한 바퀴 다 돌려면 주머니에 10유로 정도는 넉넉하게 챙겨가야 합니다. 그래도 아이 덕분에 예전이면 휙 돌아봤을 성당도 몇 분이지만 잠시 머물며 초를 봉헌하며 기도도 하고, 여러 가지 잡념들도 떨칠 수 있게 됩니다. 항상 기도의 끝에는 이 모든 걸 감사하는 마음 한가득 채우게 됩니다. 이제는 아이에게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라고 하니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줄줄이 나열합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콰지, 대쉬, 바나클 대장, 튜닙..." 아이는 사랑하는 옥토넛 식구들을 위해서도 노트르담 성당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프랑스는 크리스마스나 연말에는 웬만한 식당들이 특별 메뉴를 선보이며 진작이 예약을 마감했기 때문에 막판에 여행을 떠나기로 한 저희는 어디 유명한 식당을 예약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집으로 가는 길에 간단히 국수라도 먹고 들어갈까 하다가 우연히 소르본 대학 근처의 라틴 쿼터에서 한 해산물 식당을 발견했습니다. 혹시나 해서 자리가 있는지 물어보니 7시부터는 만석 예약이니 혹시 그전에 식사를 끝내준다면 자리를 내어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흰 운 좋게도 올해 마지막 정말 맛있는 해산물 요리를 맛볼 수 있게 되었죠.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오려고 택시를 타니 이미 샹젤리제는 개선문 카운트 다운을 위해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샹젤리제 한가운데 있는 호텔까지는 걸어서 들어와야만 했지요. 7시도 안된 시각이었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이 샹젤리제로 모여들고 있었습니다. 재밌는 것은 길거리의 상점들이 일찍 문을 닫고 전문 작업자들이 문을 나무로 봉쇄하고 있었습니다. 너무 많은 인파가 몰려서 상점의 유리문이 깨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지요. 저희가 묵었던 호텔도 입구 문을 굳게 잠가 놓은 뒤 방키를 보여주어야만 입장시켜 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일지, 그냥 이제라도 마음을 바꿔 그냥 호텔 방 안에서 개선문 카운트 다운을 뉴스로 보는 게 낫지 않을까 잠깐 고민을 했습니다.
점점 2017년의 끝으로 시간은 향해가고 샹젤리제 거리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개선문에는 미디어 아트로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사람들은 군데군데 둥글게 모여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면서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했습니다. 샹젤리제 양 가로에는 기포가 보글보글 올라오는 샴페인 잔을 닮은 가로수들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카운트다운까지 30초가 남고 개선문은 화려한 빛으로 가득 찼습니다. 2018년 0시가 되자 개선문에서는 폭죽이 터지며 모두 기쁜 마음으로 새해를 다 같이 축하했습니다. 남편의 버킷 리스트가 그렇게 한 줄 지워졌습니다.
보통 9시면 잠이 들던 아이도 기특하게 12시까지 참아주어 저희 세 가족은 다 같이 개선문 앞에서의 새해맞이 카운트다운을 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더 많은 인파로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지기 전에 호텔로 쏙 들어왔지요. 사실 개선문에서의 새해맞이는 춥고 사람도 많아서 더 가까이 가서 보는 것은 힘들기 때문에 앞으로는 TV로 보는 것이 낫겠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앞으로 매년 새해에 TV로 개선문의 카운트다운 뉴스를 볼 때마다 우리의 이 날이 떠오르겠지요. 내년에는 어디 고요한 적막이 흐르는 높은 산속에서 TV 보면서 카운트다운을 하자고 남편과 약속하고 그렇게 2017년의 마지막 밤을,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해산물 레스토랑: Le Bar à Huitres Saint-Germain
http://www.lebarahuitres.com/fr/index.php
파리에서 여러 콘셉트의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Dorr에서 선보이는 해산물 식당입니다. Dorr에서는 해산물로 유명한 노르망디에 오이스터 양식장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곳에서 신선한 재료를 공급받고 있습니다. 식당 앞에는 그 날 사용할 해산물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신선함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고, 랍스터의 경우에 식당 안에 있는 수조에서 직접 잡아서 요리해줍니다. 노르망디의 굴부터 쫄깃쫄깃 딱새우와 알이 꽉 찬 게요리까지 한가득 나오는데 언제 이걸 다 먹지 싶어도 순식간에 빈 껍데기만 남을 정도로 맛이 좋습니다. 특별하게 과한 양념이나 조리법 대신에 해산물의 신선한 식감을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조리를 하는 것이 이 곳의 인기 비결입니다.
파리 샹젤리제 메리어트 호텔:
아주 오래전 루이뷔통 매장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을 레노베이션해서 만든 호텔입니다. 샹젤리제에 있는 유일한 5성 호텔이기도 하지요. 사실, 전 파리에서 샹젤리제에 숙소를 잡는 건 마치 서울에서 명동 한복판에 있는 호텔을 가는 것 같아 처음에는 좀 싫었는데, 이번처럼 개선문 카운트다운을 하기 위해서는 이 곳만 한 장소가 없는 것 같습니다. 12월 31일의 경우 개선문이 보이는 방향의 방은 몇 달 전부터 이미 예약이 꽉 차기 때문에 미리 예약해두어야 합니다. 큰 기대를 안 하고 갔던 호텔이었는데 바로 옆에 파리에서 꼭 가봐야 할 겔랑 부띠끄 매장도 있고, 밤늦게까지 하는 피에르 에르메와 록시땅의 콜라보레이션 카페도 있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잘 한 선택 중의 하나가 되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