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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Dec 28. 2015

이벤트의 여신

워킹맘의 돌잔치 준비하기

윤서가 태어난 지 벌써 10개월이 넘었다. 이젠 아기라는 표현보다는 리틀 어린이란 말이 더 어울릴 정도로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되고, 자기 기분과 감정을 가족들에게 한껏 표현을 한다. 재롱도 많이 늘었다. 비록 유아 전문가가 보기에 의미 없는 몸짓, 표정일지언정 적어도 엄마 눈에는 그렇게 보인다.


이제 곧 돌이 다가온다. 3월 초에 태어났으니 이제 돌잔치까지 3개월 정도 남았다. 누군가는 산후조리원에 들어갈 때부터 유명한 돌  사진작가 섭외를 해놓는다고 하니, 그거에 비하면 좀 많이 늦었다. 유명한 곳들은 진작에 예약 마감을 해서 결국 결혼식 스냅을 찍어준 분께 연락을 드려서 겨우 예약을 잡았다.


회사에 다시 복귀해서 워킹맘이 된지 3개월, 돌잔치 뭐 알아보려고 해도 식당이나 호텔들이 영업하는 낮에는 도저히 짬이 안 난다. 회사에서 돌잔치 문의 전화하기도 눈치가 보여 불가능하다. 몇 군데 알아보고 퇴짜 맞아서 결국 돌잡이는 집에서 하기로 했다. 셀프 돌상을 만드는 열혈 엄마들도 요즘 블로그들에 많이 보이는데, 손재주도 안 따라주고 괜히 돌상 차리다가 좋은 날 신경 예민해지고 싶지는 않아서 고민이다. 식사는 집에서 할 엄두가 도저히 안 나서 우리 부부가 상견례를 했던 의미가 있는 장소인 중국집을 일단 예약해놨다.


지난 주말, 뭐라도 하나 확실하게 끝내 놓자 해서 윤서의 드레스와 한복을 샀다. 돌쟁이 아기 드레스도 종류가 엄청 많다. 웨딩드레스처럼 대여는 물론, 맞춤 드레스도 요즘 인기다. 예전부터 예쁘다고  눈여겨보았던 핑크색 드레스와 어울릴 액세서리들을 골랐다. 너무 돌잔치스럽지 않은 디자인이기도 해서 나중에라도 특별한 날 몇 번 더 입힐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친정 엄마가 드레스 옆에 걸려있던 핑크색 투투도 같이 사주셨다. 사이즈가  5세밖에 안 남아있어서 허리를 시침질을 해서 줄여서 입혀주니 윤서가 좋다고 까르르 거리면서 좋아한다.



돌 한복도 전통 한복부터 리버티 한복까지 다양하게 있는데, 결혼식 한복 맞춘 집에 알아보니 가격이 어른 한복 맞먹는다. 정말 한 번 입고 말 옷인데 그 정도 쓰는 게 맞나 싶어서 한참을 망설였다. 결국 친구가 소개해준 광장 시장 한복집에 가서 전통 한복을 샀다. 사진으로 보면 꽤 괜찮은데, 견물생심이라고 진짜 좋은 한복 원단으로 어른 한복처럼 제대로 만든 전통 한복을 보니 광장시장 한복은 중고나라에 팔아버리고 그냥 새 거 맞춰줄까 자꾸 욕심이 든다.



이제 웬만하면 다 준비가 되었는데, 제일 준비가 안된 건 돌잔치의 또 다른 여주인공, 나다. 보통 출산 6개월 안에 임신 전 몸무게로 돌아와야 되고, 그렇지 않으면 내 몸이 이 몸무게를 기억해서 평생 간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임신 후 20킬로 이상 늘은 몸무게에서 마지막 7~8킬로가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안 한다. (사실 이 숫자가 평생만 가도 소원이 없겠는데, 보통은 둘째, 셋째를 낳을 때마다 미처 못 뺀 7~8킬로가 더해지고, 여기에 그 무서운 나잇살이 붙으면? 50킬로 아가씨가 70킬로 아줌마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남들은 아기 재우고 새벽 2시부터 악착같이 운동을 하기도 하고, 다이어트 전문 한의원에 가서 왕침을 맞으며 출산 전보다 더 날씬해진 몸매로 3개월 만에 나타나는데. 난 아기 낳은 후 남편이랑  그동안 못 간 여행 다니면서 정신 건강만 회복하고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결국 직계 가족, 할머니 할아버지만 모셔두고 밥 한 끼 먹을 건데 이름 붙은 날이라고 괜히 뭐 준비해야 될 것 같다. 사실, 솔직히 말하면 좀 설렌다. 결혼식 이후에 첫 빅 이벤트이기 때문이다. 결혼식도 그렇지만, 그 엄청난 비용 다 들여서 결혼식 하루만 행복하면 너무 아깝지 않은가! 결혼식 준비하는 그 몇 달의 시간 동안 내내 오래 오래 즐거워야지 아깝지 않고 결과도 더 좋다. 돌잔치도 마찬가지다. 워킹맘이라 바쁘단 핑계를 대긴 하지만, 출퇴근 시간에 짬짬이 핸드폰으로 남의 집 돌잔치 어떻게 했나 구경도 하고, 다른 엄마들처럼 돌잔치 문의도 하고 그러는 게 사실 되게 재밌다.


"신부님, 이제 나머지는 저희가 다 알아서 할테니, 신부님은 입장만 잘 하시면 됩니다"며 아빠랑 손잡고 식장 입장 전까지도 들러리들이 박자 안 놓치고 입장 잘 했나, 내가 걸어갈 버진 로드 양 쪽으로 길게 놓여진 스퀘어 테이블에 지정된 사람들이 다 제대로 앉았나, 바쁘게 챙기던 나에게 몇 달 동안 결혼식 같이 준비해서 친해진 호텔 지배인님이 한 말이다. 아마도 행사가 잘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염려보다는, 내 행사가 잘 돌아가고 있음을 확인하고픈 즐거움이 더 컸으리라. 아무래도 내 안에, 내가 모르는 이벤트의 여신이 살고 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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