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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vermouse Dec 09. 2015

35+?

여자, 서른 중반 이후의 삶에 대하여

꽤 괜찮은 외국계 회사에서 브랜드를 홍보하는 PR 매니저. 그건 대학교를 졸업할 때쯤 갖게 된 내 서른 중반 즈음 이루고 싶었던 꿈이었다. 그 당시 코스모폴리탄 커리어 어드바이스를 보면 왜 이리 세련된 이미지의 브랜드 홍보 매니저들이 자주 등장했었는지. 아무튼 지금 생각하면 좀 유치하긴 하지만, 난 그런 잡지들 속에서 내 첫 번째 꿈을 찾았다.


유난히 우중충했던 분위기의 학교도, 경영학과랑 헷갈려서 잘못 선택한 경제학이란 전공도 나랑 너무 안 맞아서 겨우겨우 대학 생활을 보냈다. 내 유일한 낙은 중도에 가서 술술 읽히는 책이나 여러 권 빌려보는 것이었다. 어느 날, 광고 마케팅 서재를 기웃거리다, 국제구호 전문가 한비야 씨와 우리나라 국제 홍보 1세대라고 할 수 있는 조안리 씨의 책을 보게 되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그분들의 첫 직업이었던 '홍보'라는 게 굉장히 멋지고 세련된 일 같아 보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책에서  그분들의 첫 직장이 '버슨머스텔라'라는 처음 들어보는 회사라는 것을 확인하고 검색해봤는데, 미국계 홍보회사였다. 우연인지, 마침 그 회사에서 겨울 인턴을 구한다는 공지가 떴고,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대학 생활의 마지막 학기에 첫 번째  사회생활로의 단추가 끼워지게 되었다.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이 된 명동 롯데 백화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인턴 합격 소식을 듣고 방방 뛰며 기뻐한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지금의 회사 근처인  그곳을 지날 때마다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 열 손가락 안에 든 그 날의 마음이 새록새록 생각난다.


그런데 내가 꿈꿨던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내 30대 중반까지의 모습. 멋진 직장을 갖고, 좋은 동료들과 하하호호 일하며 지내고,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하거나, 혹은 나 하고 싶은 거 충분히 다 해본 후에 꽤 늦은 결혼을 하는 것. 그 이후의 모습을 난 미처 그려보지 않았던 것이다.  거진 거진 그 꿈의 종착역에 다다르니, 이제 어디로 가야 될지 막막하다.


아마 이건 나 뿐만이 아니라 꽤 많은 20대 여성들의 꿈이 아마 그 나이 정도에서 멈춰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또래 친구들이 다 비슷한 고민들을 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작은 사건이나 위기들은 있었지만, 어쨌든 큰 탈없이 버틸 수 있었던 10년은 무난히 넘어갔다면, 앞으로 아내도 되고 엄마도 되어버린, 예전같이 모든 일에 화이팅 넘치는 마음은 조금 사라져버린, 앞으로의 10년, 20년을 어떤 꿈을 꾸면서 살 것인가. 요즘 나의 생활은 조화롭고 행복하지만, 마음 한 켠은 좀 불안하다. 예전에 대학 시절 도서관에서 이 서재, 저 서재 기웃거리며, 내 꿈은 무엇일까, 내가 도대체 할 수 있는 건 뭘까 고민하던 20대  그때의 절박했던 마음이 10년 만에 다시 느껴지는 듯하다.


시각 장애를 갖고 있지만 하버드를 거쳐 월가의 잘 나가는 애널리스트가 된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의 저자, 신순규 씨는 살면서 누구보다도 많은 장애와 벽을 만났지만,  그때마다 자기 인생을 내비게이션이라 생각하고 그 혼돈의 자리에서 내비게이션 탐색을 재부팅했다고 한다.

 방향을 잃을 때 내비게이션이 늘 재탐색하잖아요. 제 인생도 그랬어요. 계속 재탐색하면서 여러 차례 돌다가 지금 이 자리에 서 있게 된 거니까요.

지금이 나에게도 바로 그 순간인 것 같다. 35+, 내비게이션을 재부팅해야 되는 바로 그 시간. 얼추 다 온 것 같다고 내비게이션을 꺼버리지 않고 말이다. 나는 다시 10년 전 그 날 롯데 백화점 앞에서 인턴 합격 전화를 받고 방방 뛰던  그때의 마음처럼, 다시 가슴 뛰는 꿈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면 혹은 지금 이 길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부디 내 인생의 내비게이션이 나를 옳은 길로 이끌어주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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